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를 꿈꾸는 대학생 동아리 ‘S&D’의 영어 토론장. 한 학생이 피라미드 구조의 글쓰기를 통해 ‘길거리 흡연 금지법’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직장인들의 영어토론모임 ‘가나난 포럼’.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 강연을 들은 뒤 토론을 벌이면서 전문 지식과 영어 실력을 다지고 있다.
“In my opinion…(내 생각에는).” “It’s not objective, but subjective(그건 객관적이지 않아요. 주관적이네요).”
토요일인데, 서울대 경영대 강의실에 10여 명의 대학생이 모여 영어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스트럭처 앤드 디베이팅 그룹(S&D)’의 모임이다. S&D는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를 꿈꾸는 대학생들이 토론하며 공부하는 동아리. 일주일에 한 번 모이고 2주에 한 번은 영어로 토론한다.
이 날은 ‘매킨지 앤드 컴퍼니’의 첫 여성 컨설턴트 바버라 민토 씨가 쓴 ‘논리의 기술’에 맞춰 각자 주제를 발표했다. 이 책은 핵심적인 생각을 먼저 서술한 뒤 단계별로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해 가는 ‘피라미드 구조의 글쓰기’를 소개하고 있다.
한영경(연세대 경영학과 4년) 씨의 주제는 스크린 쿼터.
“스크린쿼터는 경제적 이슈입니다. 우리에겐 한국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죠. ‘미션 임파서블 3’와 ‘여고생 시집가기’가 있다면 무엇을 볼지 뻔하잖아요. 그러나 미국에는 영화 수출의 장벽이죠.”
“미안하지만 그건 공정한 비교가 아닙니다. ‘미션 임파서블 3’라면 흥행작인 ‘왕의 남자’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교해야죠.” (정재욱·고려대 영문과 4년)
“지금 피라미드 구조로 설명하는 것 맞나요? 아닌 것 같은데. 더구나 스크린 쿼터가 경제적 이슈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왜’라는 질문으로 연결되지 않아요. 논리적인 연결성이 약해요.” (이은정·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과 4년)
다음 발표자인 김재국(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4년) 씨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주제로 잡았다. “우리에게 미국과의 FTA가 필요하냐. 저의 의견은 예스입니다. 왜냐. 이득이 많고 손실이 있다 해도 이득보다 적으니까요. (중략) 더구나 우리는 변화를 거부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를 변화시킬 테니까요.”
“잠깐, 마지막에 얘기한 게 더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요? 제시한 두 가지 이유와 동등하게 나와도 될 것 같아요.” (이은정)
급할 땐 “그게 아니고” “그러면” 등 우리말이 튀어나와 웃음 바다가 되지만 분위기는 시종 진지하다. S&D는 이날처럼 사고력 키우기, 비즈니스 사례 연구, 졸업생 초청 강연 등으로 운영된다. 모임은 보통 6시간 진행되는데 준비에만 이틀이 꼬박 걸린다고 한다. 회원도 서류전형과 인터뷰를 거쳐 뽑는다.
회장 박은상(서울대 경제학부 3년) 씨는 “나중에 무슨 일을 하든 영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수여서 대학생 때부터 준비하는 것”이라며 “전문 분야에 대해 논리적으로 말하는 능력을 갖추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대, 국제 무대에서 영어로 논리를 전개하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은 필수. 단순한 회화 실력만으로는 영어를 잘한다는 소리도 듣기 어렵다. 이런 변화에 맞춰 영어 토론 모임을 갖는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 지식도 넓히고 영어 실력도 쌓고
월요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삼성투신운용 회의실에서는 직장인 영어 토론 모임인 ‘가나난 포럼’이 열린다. 회원은 20∼40대 회사원 대학원생 변호사 언론인 국회의원 등 다양하다. 일본인 중국인 미국인도 있다. 기존 멤버의 추천을 통해 가입한다.
가나난 포럼은 초청 강연자가 특정 주제를 설명하고 이를 회원들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금까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현각 스님, 주우식 삼성전자 전무, 어윤대 고려대 총장, 송자 전 연세대 총장, 소설가 복거일 씨, 이스라엘과 덴마크 대사 등이 강연했다. 10월까지 예정된 주제를 보면 국제 리더 키우기, 로마제국의 흥망, 은하수의 비밀 등 한국어로 토론하기에도 만만치 않다. 가나난 포럼은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이상향(가나안)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창립 멤버인 이성훈 콘페리 인터내셔널 부사장은 “1986년에 영어 강의를 같이 듣던 연세대생들이 영어로 시사 토론을 해 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며 “멤버들에게 영어는 부수적인 문제이고 낯선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더 높다”고 말했다.
기자가 방문한 날의 강연자는 세계치과의사연맹(FDI) 전 회장인 윤흥렬 씨. 그는 21일간 이를 닦지 않은 실험 결과를 사진으로 보여 주며 설명했다.
“왜 초등학교 교과서에 저런 사진을 안 넣죠? 담뱃갑에 흡연 경고문 붙이듯 과자 봉지에 충치 경고문을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성훈 부사장)
“저건 극단적인 경우잖아요. 애들이 아무리 이를 안 닦아도 하루 정도죠.” (황기연 홍익대 도시공학부 교수)
“한국인들은 점심 후 회사에서 이를 닦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거든요. 한국인이 치아 건강에 더 민감한 것 같아요.” (스즈키 히토시 일본무역진흥기구 차장)
“그게 아니라 한국인들은 칫솔질 등 개인적 용무를 다른 사람 앞에서 스스럼없이 하는 편이지만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성훈 부사장)
“맞아요. 그건 문화적 차이인 것 같습니다.” (임창규 삼성투신운용 주식운용팀장)
이 포럼은 국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멤버 중 상하이로 간 사람들이 1년 전 가나난 상하이를 만들었고 지난달에는 가나난 워싱턴도 결성됐다. 업무 때문에 상하이와 미국을 오가는 멤버들은 현지의 토론에 참여하고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 이런 자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현지의 오피니언 리더들과도 교류할 수 있다.
송경림(삼성전자 미주영업그룹) 씨는 “토론을 통해 적시에 요점을 말하는 노하우를 익혔다”며 “단어 하나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외국에 살다 온 다른 멤버들의 말을 잘 들었다가 다음에 써 보면 내 것이 된다”고 말했다.
멤버들의 지적 수준과 영어 실력은 이 포럼의 강점. 강연을 했다가 멤버가 된 곽재성 교수(경희대 국제대학원 국제정치학)는 “함축적 의미가 많은 우리말과 달리 영어는 인과 관계가 더 분명해 한국식으로 영어를 하면 협상이나 토론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힘들다”고 말했다.
○ 키워드 중심으로 말하라
미국 등 해외 유학생들은 영어 토론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한다.
미국 코넬대 로스쿨을 나온 김호철 검사(법무부 형사법제과장)는 “수업이 모두 토론 형식으로 진행돼 처음에는 ‘과묵한 학생’이 되어야 했다”며 “영어 실력은 기본이고 배경 지식이 있어야 토론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는 성정민 씨는 “성적의 반 이상이 토론으로 결정된다”고 말했다.
토론에서 드러나는 문화적 차이도 적지 않다. 아시아권 학생들은 비교적 안전한 방향으로 의견을 펴지만, 하버드대에서는 차별화된 의견을 낼수록 환영받는다. 미국이나 유럽 학생들은 자기 의견을 분명히 표현하고 차이가 있으면 논쟁을 벌이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성 씨는 영어 토론에 익숙해지는 방법의 하나로 ‘키워드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기’를 추천했다.
“문법이나 표현이 틀린 말보다 타이밍에 어긋나 토론 방향을 엉뚱하게 돌리는 발언이 문제입니다. 머릿속으로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말하려고 하면 타이밍을 놓치게 되죠.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키워드를 두어 개 뽑아놓고 그것만 전달해도 성공이죠.”
가나난 포럼에서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과 억양을 구사했던 김수지 씨는 민족사관고 졸업생으로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다. 휴학 중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고교 수업 덕분에 유학 전에 영어 토론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그도 처음에는 주제가 정해지면 할 말을 영어로 적어 두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말하겠다는 자세로 임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 눈에는 노트를 읽는 내 모습이 우스워 보였겠지만 특기가 ‘얼굴에 철판 깔기’거든요. ‘I agree(동의한다)’ 등 한마디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약속했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와튼스쿨 MBA를 5월에 졸업한 장혜조 씨는 “영어보다 논리의 구성이 더 중요한데, 한국 유학생들은 영어를 못한다며 말하고 싶어도 참는 경향이 있다”며 “상대방을 무조건 반박하기보다 남의 의견을 인정하고 합의점을 찾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태도가 더 좋은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글=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알아두면 유용한 토론 영어▼
《영어 토론에서 상대의 주장에 동의하거나 반박할 때 쓸 수 있는 전형적인 문장을 알아두면 요긴하다. 토론뿐 아니라 의사를 타진하는 대화에서도 쓸 수 있다.》
Are you sure that’s going to do the job?(그것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확신합니까?)I’m totally against the new public transportation system.(새로운 대중교통 시스템에 전적으로 반대합니다.)In my opinion, we should shut down all the brothels in this country.(제 생각엔, 이 나라의 모든 윤락업소를 문닫게 해야 합니다.)You’ve got a point there, but what alternatives do we have?(일리 있습니다만, 우리에게 어떤 대안이 있죠?)If I were in your shoes, I would file a formal complaint with the city.(내가 당신 처지라면, 시당국에 정식으로 진정서를 제출하겠습니다.)Could you elaborate on Korea’s traditional medicine?(한의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How can we improve our living standards?(어떻게 하면 생활 수준을 높일 수 있을까요?)I see things differently. I don’t think it’s an invasion of one’s privacy.(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것이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I’m confident that our domestic economy will pick up soon.(국내 경제가 곧 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In all probability, you are wrong because people just don’t have money to spend.(사람들이 단지 쓸 돈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십중팔구 당신의 생각이 틀립니다.)Don’t you think we should continue our research?(연구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Taking everything into consideration, it might be our best option.(모든 것을 감안할 때 그것이 최선의 선택인 듯 합니다.) Are you asking me if we could keep growing at our current pace?(현재의 성장속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까?)What do you think about moving our production facility abroad?(생산 설비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What are some drawbacks?(어떤 단점이 있죠?)To put it in a nutshell, we should make tougher environmental laws.(한마디로 말해 더 강력한 환경법을 제정해야 합니다.)We don’t stand a chance of turning profits this year.(올해 수익이 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How are we going to convince our shareholders to seal the deal?(주주들이 이 거래를 승인하도록 어떻게 설득하실 것입니까?)I’m pretty disappointed with consumers' initial reaction of our new line of products.(신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초기 반응에 상당히 실망했습니다.) I think we need more time to study how it'll affect our environment.(더 시간을 갖고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연구해야 합니다.) 스티브 정 EBS FM 파워잉글리시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