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학교가 끝나면 기차역에서 구두를 닦았고 그 돈을 집안 살림에 보태곤 했다. 가끔씩은 1, 2크루제이루씩 따로 떼어 두었다가 어두컴컴한 동네 극장에 가서 나머지 세상의 삶은 어떤지 구경하곤 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아버지는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오직 먹고살기 위해 축구를 하고 계셨으니, 구두를 닦는 일은 꼭 필요한 수입원이 아닐 수 없었다.”―본문 중에서》
여기까지 읽다 잠시 눈을 감는다. 초여름의 부드러운 미풍이 졸음을 몰고 온 까닭이다. 아득한 단잠에 빠질 즈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는 기분을 느낀다. 뒤를 돌아보자 나무로 만든 구두통을 어깨에 멘 열 살 남짓한 소년이 한쪽 발로 돌멩이를 툭툭 차고 있는 것이 보인다. 치아와 손톱을 제외하고 온통 검은 피부의 소년.
광대뼈가 드러나는 얼굴에는 피부색보다 더 진한 구두약이 묻어 있다. 머리카락은 버려진 철사 덩어리처럼 아무렇게나 엉켜 있고 피곤함에 찌든 눈동자는 충혈된 달 같다. 당초 색상을 모두 잃어버린 셔츠는 여기저기 찢겨 있거나 다른 색감의 헝겊으로 기워져 있다. 바지는 말할 것도 없다. 어쩐지 낯이 익은 소년을 향해 이름을 묻자 소년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이렇게 답한다.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
이윽고 소년은 나를 향해 손짓한다. 이쪽으로 오라고, 어서 오라고. 배고픈 악어의 입처럼 앞코가 한껏 벌어져 있는 운동화를 신고서 소년이 달리기 시작한다. 내가 소년의 뒤를 쫓으면 쫓을수록 소년이 차던 돌멩이는 축구공으로 변하고 남루한 옷가지는 점차 세련된 카나리아 군단의 노란색 유니폼으로 바뀌어 간다. 드디어 소년이 멈추자 그 모든 것이 변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이제 동정을 자극하던 소년이 아니라 미소가 부드러운 성인이다. 어느덧 그의 어깨에 메여 있던 구두통은 사라지고 손에는 황금빛 쥘리메컵이 들려 있다….
로버트 L 피시와 펠레가 공동으로 엮은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구두닦이 소년 ‘에드송’ 시절에서부터 지금의 유명인사 ‘펠레’까지를 펠레 본인의 정직한 기억을 토대로 담담히 기록한 책이다. 또한 1958년 17세의 나이로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네 번의 월드컵에서 세 번의 우승컵을 차지했던 ‘축구 황제’ 펠레의 이야기에서부터 개인 파산 위기에까지 몰리며 스스로를 그라운드에 내던져 빚을 갚아야 했던 ‘실패한 사회인’ 펠레의 이야기까지를 솔직하게 담아낸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느 자서전에 있을 법한 과장이나 공치사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호두 아이스크림처럼 담백하게 자신과 축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축구가 중심이 아니라 축구를 몹시도 사랑했던 한 인간의 꿈과 좌절, 성공과 실패를 축구라는 매개를 통해 가감 없이 표현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축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교훈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과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는 펠레의 명언처럼 협동심과 인내를 강조한다. 이 책의 한 가지 흠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지나치게 완벽한 펠레가 책을 읽고 나면 더 완벽하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박동희 스포츠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