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은 보도된 바와 같이 일단 ‘해답 없이 봉합’되었다. 이후 우리 정부는 국제법 재판에 의한 강제분쟁 해결 절차를 배제하겠다는 선언서를 유엔에 제출하였다. 유엔해양법협약 제298조는 한쪽이 재판을 안 받겠다고 선언하면 재판을 안 받아도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독도를 국제분쟁 지역화하고 국제법 재판소에 끌고 가려던 일본의 활동은 일단 타격을 입게 됐다.
그렇다고 일본이 독도 영유권 확보를 위한 활동을 중단하리라고 보진 않는다. 이에 대해 우리가 대비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독도 영유권 문제가 해결될 수는 있을까? 현실적으로 보아 상당 기간 불가능하다. 두 나라 중 어느 쪽이든 독도 영유권을 포기하면 그 정부는 정권 유지가 힘들 뿐 아니라 그 후에도 온갖 고초를 겪어야 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후손들에게 미루어 놓는 수밖에 없다. 그 대신 6월 12, 13일 열리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협상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
물론 여기서도 독도가 문제다. EEZ 협상의 양상은 독도를 무엇으로 보느냐, 즉 섬(islands)이냐 암석(rocks)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와 관련해 ‘독도를 기점으로 한국의 EEZ를 그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만 필자는 달리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에 ‘인간의 거주 또는 독자적인 경제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암석은 EEZ 또는 대륙붕을 가질 수 없다’고 되어 있다.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독도는 암석으로 보는 것이 보편타당할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EEZ 획정은 영유권과는 관계없다. ‘독도가 섬인가, 암석인가’ 하는 것은 ‘독도가 한국 영토인가, 일본 영토인가’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따라서 독도를 기점으로 EEZ를 그을 때 해역의 넓이가 더 크네 작네 하는 소승적 문제에 매달리기보다 한국이 유엔해양법과 그 정신에 충실하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 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이고 길게 보아 국익에 부합하는 길이라고 본다.
둘째, 그렇다면 울릉도를 기점으로 EEZ를 긋고 협상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도 독도가 우리 EEZ 안에 들어옴은 물론이다. 울릉도를 기점으로 하면 동해의 우리 해역이 2만1000km² 정도 줄어든다. 하지만 우리가 독도를 기점으로 EEZ를 긋고 협상에 임하려 한다면 일본에도 암석을 기점으로 EEZ를 획정할 수 있는 구실을 주게 된다. 일본이 제주도 남쪽에 있는 암석인 도리시마(鳥島)를 기점으로 EEZ를 그으면 우리 해역이 약 3만6000km² 줄어든다.
셋째, 일본이 도리시마뿐 아니라 일본 열도 주변 암석 14개를 기준으로 EEZ를 획정한다면 한국 선박이 일본 EEZ의 규제를 받아야 할 바다의 넓이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이때 일본 EEZ의 넓이는 일본 전 국토의 10.6배인 405만 km²가 된다. 하지만 섬을 기점으로 하면 약 반으로 줄어든다.
혹자는 “일본이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를 기준으로 EEZ를 그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독도의 영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떠나 암석은 기점이 될 수 없다. 일본은 우리가 독도를 기점으로 EEZ를 주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넷째, 또한 중국이 중국 본토의 동남부에 있는 퉁다오(童島·독도보다 작은 암석이다)에서 EEZ를 획정하려 할 때 우리 제4광구의 상당 부분이 깎여 나갈 것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중(二重) 기준을 적용하자’는 주장이 있다. 동해에선 이 논리로, 남해에선 저 논리로 대응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주장에는 합법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상대방과 세계에 설득력이 있다.
위법과 떼쓰기는 논리가 모자라고 상황이 불리한 쪽이 택하는 전략이다. 논리적으로 당당한 데다 특히 이미 독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한국이 취할 만한 선택이 아니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하도록 촉구해야지, 거기에 끌려가 비슷한 짓을 하면 안 된다.
안병태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 전 해군참모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