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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한일관계 2천년-보이는 역사, 보이지 않는 역사

입력 | 2006-06-03 02:59:00

한국의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왼쪽)과 일본의 국보 1호 고류(廣隆)사 목조미륵반가사유상. 쌍둥이처럼 닮은 두 불상은 거의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애써 서로를 외면해 온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신비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일관계 2천년-보이는 역사, 보이지 않는 역사/한일관계사학회 편 전 3권·각 400쪽 내외·각권 16000원·경인문화사

‘배니싱 트윈(vanishing twin)’이라는 말이 있다. 엄마 배 속에서 쌍둥이였던 아이 중 하나가 유산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한일관계의 뿌리를 파헤쳐 갈수록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 그런 배니싱 트윈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한일관계사학회(회장 연민수)의 학자 54명이 필자로 참여해 한일관계사를 고중세편, 근세편, 근현대편으로 나눠 가장 궁금한 98개의 주제로 정리한 이 책에서도 그 배니싱 트윈에 대한 애증을 읽을 수 있다.

기원전 3세기경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무리 지어 일본열도로 건너갔다. 이들은 기원후 3세기까지 600여 년간 야요이(彌生)문화라는 청동기·철기 문명을 이뤘다. 이 야요이인들은 원주민격인 조몬(繩文)인을 몰아내고 오늘날 일본인의 조상이 됐다.

그뿐만 아니다. 백제와 가야, 고구려인들은 나라가 망한 뒤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른바 도래인들이다. 그런데 이 도래인들이 이룩한 일본의 역사서에서 한국은 왜 그처럼 비하되고 있을까. 일본은 임나일본부를 통해 한반도를 식민통치했고, 칠지도는 백제왕이 일왕에게 바친 것이고, 광개토왕비문의 신묘년조 기사는 백제·신라가 일본의 신민이라는 주장은 사실인가.

이 책은 이를 모두 부정한다. 그러나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의 고대 역사가 밀접한 연관을 맺었기 때문이다. 당시 왜(일본)는 백제·가야와 밀접한 동맹관계를 맺었다. 칠지도는 백제와 왜의 동맹의 상징물이었고, 임나일본부는 가야의 여러 나라에 파견된 왜의 외교사절이었다. 또 신묘년조 기사는 고구려가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을 위해 왜를 과장되게 묘사한 것이다.

배니싱 트윈의 역사는 663년 왜가 백제부흥군을 돕기 위해 2만7000명의 병력을 파병했다가 백촌강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시작된다. 특히 한반도에서 패퇴한 도래인이 대거 유입된 일본은 이후 자신들의 기억에서 한반도의 영향 자체를 부정하는 ‘역사 다시 쓰기’를 시작한다. 이런 나쁜 추억은 원에 등을 떠밀린 고려의 일본 침공 시도와 임진왜란을 통해 악화된다.

임진왜란은 쌍둥이 중 한 명이 다른 쌍둥이의 태반을 빼앗아 흡수하려드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10만 명 이상의 코를 베어 만든 일본의 귀무덤(耳塚)과 1만 권 이상의 책과 학자, 도공 그리고 엄청난 문화재 약탈로 한쪽은 쇠락해 간 반면 다른 한쪽은 새로운 문명의 토대를 마련한다. 이는 19세기 말 이후 다시 시작된 일본의 한국 침략으로 이어지면서 배니싱 트윈의 역사는 ‘배싱 트윈(bashing twin·쌍둥이 때리기)’이라는 가학적 양상으로 변모한다. 이 책의 부제에 쓰인 ‘보이는 역사’가 배싱 트윈의 역사라면 ‘보이지 않는 역사’는 곧 배니싱 트윈의 역사가 아닐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