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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충식]‘빚 다이어트’

입력 | 2006-06-03 03:00:00


비만(肥滿)이 육체의 병이 되듯, 빚은 마음의 병을 키운다.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부채(負債)가 얽히면 마음은 바람 잘 날 없게 된다. ‘빚 없는 삶’이라는 책은 “미국의 이혼 증가가 개인의 부채 증가와 비슷한 상승곡선을 그린다”고 진단한다. 가계 빚이 늘어나면 결혼생활에 금이 가고 가정 파탄이 오기 쉽다는 얘기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일찍이 ‘빚은 자유인을 노예로 만든다’ ‘부채는 최악의 가난이다’ ‘빚 얻고 걱정 얻는다’는 등의 경구(警句)를 대물림했을까.

▷빚진 죄인이라 했다. 돈을 빌리면 채권자의 눈치를 보며 추하고 비굴하게 돼 버리기 마련이다. 높은 이자를 갚느라 다른 재산에까지 손실이 간다. 그러므로 부채를 줄이는 ‘빚 다이어트’는 행복해지는 비결 중의 하나다. 빚이 없으면 가족끼리 돈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언쟁을 벌이는 횟수도 줄어든다. 채권자의 독촉을 피해 도망칠 필요도,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 철렁거리는 공포를 느낄 필요도 없다.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유대인은 빚을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후손에게 ‘빚은 지지 않는 것이 상책이며, 어쩔 수 없이 쓴다면 서둘러 갚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롯데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을 비롯한 재일교포 부호들도 비슷한 철학을 갖고 있다. 애당초 신용이 약해서 일본 은행에서 돈을 빌려 쓸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빚 안 쓰는 경영’이 기본이다. 이들은 국내 기업인들이 빚더미에 올라앉아 ‘탕감해 달라’고 정부나 은행에 떼쓰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없다고 개탄한다.

▷빚은 절제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비만과 통한다. 과식 습관처럼, 한번 맛들이면 과소비와 부채의 수렁에서 헤어나기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빚 얻어 쓰겠느냐는 항변도 있을 수 있지만, 빚도 습관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때 베스트셀러에 오른 ‘청빈의 사상’은 바로 옛사람들의 간소한 삶이 보여 주는 ‘심신(心身) 다이어트’의 행복을 일러 준 책이다. 무모하게 갖기 위해 카드 빚을 지고 자살하기보다는 아예 ‘가진 것’만 즐기는 것도 지혜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