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는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최태원 SK 회장과 김신배 SK텔레콤 사장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협력업체 대표 93명이 참석한 가운데 상생경영 간담회를 열고 협력업체와의 ‘행복동반자경영’ 도입을 선언했다.
대기업들의 ‘선단(船團)식 경영’은 한국 기업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돼 왔다.
선단식 경영이란 여러 용도의 선박이 무리를 지어 함께 항해하는 것을 빗댄 것으로 업종별로 연관이 없는 회사끼리 상호지급보증을 하면서 ‘문어발식’으로 덩치를 키워나가는 경영 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대기업의 선단식 경영 관행은 1998년 당시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8년이 흐른 뒤 한국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모델로서 ‘새로운 선단식 경영’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브랜드를 앞세운 대기업과 우수한 기술을 가진 중소 협력업체가 대형 선단을 이뤄 해외시장을 동반 공략하는 협업 모델이 ‘상생경영’의 한 형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힐리오는 SK텔레콤과 23개 협력업체의 합작품
지난달 미국에 상륙한 SK텔레콤의 첨단 무선인터넷 서비스 ‘힐리오’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힐리오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기술의 본고장인 미국 통신 시장에서 한국의 기술과 자본이 이룬 쾌거였다. 하지만 힐리오의 첨단서비스에 국내 23개의 중소협력업체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다.
힐리오는 SK텔레콤과 미국의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인 어스링크가 합작 투자해 미국의 통신망을 빌려 이동전화뿐 아니라 무선인터넷까지 제공하는 이동통신 서비스. 이 서비스에는 무선인터넷 솔루션 개발업체와 단말기 솔루션 제공 업체, 영업 인프라 및 운영지원을 위한 업체 등 이미 검증된 국내 중소기업 23개가 공동 참여하고 있는 것.
힐리오를 통해 미국시장에 선보인 중소 벤처기업들의 기술력을 미국 시장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도 널리 알리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SK텔레콤과 정보기술(IT) 벤처인 ‘넥스모아’가 함께 개발해 유럽에 진출한 ‘아이키즈(I-Kids)’는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아이키즈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술을 활용해 자녀의 현재 위치 및 이동경로 등을 휴대전화나 컴퓨터로 확인해 주는 서비스로 작년 5월 네덜란드에 처음 진출한 데 이어 호주와 영국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금 출연 통해 협력업체 지원
SK의 중소기업 협력 사례는 비단 정보통신업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SKC와 함께 고농도 폐수정화 기술을 개발한 바이오벤처기업 큐바이오텍은 이미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으로 발돋음하고 있다.
이 기술은 화학제품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고농도 폐수를 소각 처리하는 대신 박테리아를 이용해 저농도 폐수로 바꿔 주는 새로운 기술.
SKC는 이를 통해 매년 30억 원의 예산 절감을 하게 됐고 큐바이오텍은 중국 등에 기술을 수출하게 됐다.
이 밖에도 SK는 그룹 차원에서 협력업체에 대한 현금결제 확대, 기금 출연을 통한 중소기업 자금난 해소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SK는 종전까지 SK㈜와 SK텔레콤에 한정해 시행해 온 협력업체 현금결제를 SK해운 등 17개 계열사로 확대했으며 현금 결제일도 한 달에 2회에서 4회로 늘려 중소기업의 유동성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SK그룹 기업문화실 권오용 전무는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중소협력업체들이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면서 “상생경영은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