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집권당 참패로 기록된 5·31지방선거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그는 2일 각 부처 홍보책임자들과의 토론회에서 “한두 번의 선거 결과로 나라가 잘되고 못되고, 어느 당이 흥하고 망하고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심의 흐름으로 받아들이지만 정책기조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던 선거 다음 날의 엇나간 발언에 이어 아예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도 이번 선거 결과를 노무현 정권 3년 3개월에 대한 국민의 탄핵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본보가 수도권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물었더니 응답한 40명 중 9명이 ‘대통령 책임’, 21명이 ‘대통령과 당의 공동책임’이라고 답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앞장서서 ‘선거 불복’을 선언하고 ‘내 갈 길을 가겠다’니, 그 독선과 아집이 두렵다.
노 대통령은 선거 참패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말해야 할 장면에서 느닷없이 “그 나라의 제도나 의식, 문화, 정치구조 등의 수준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불리할 때 핵심을 비켜 가는 그의 화법에는 많은 국민이 익숙해져 있겠지만 ‘국민 수준이 낮아서 저런 선거 결과가 나왔다’는 식의 태도엔 분노가 치민다. 유권자들이 자신을 대통령에 당선시켜 주고,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을 국회 과반 의석 정당으로 만들어 주었을 땐 ‘국민이 대통령’이니 ‘위대한 선택’이니 했던 그다.
대통령 발언이 파문을 빚자 청와대가 뒤늦게 취지가 잘못 전달됐다며 “선거 패배에 포괄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해명한 것도 역겹다. 대통령이 말하고 참모가 주워 담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집권 이래 자신이 일으킨 국민과의 불화를 해소하기는커녕 더 증폭시켜 보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것인가. 대통령이 이렇게 막 가면 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수렴해서 국정 전반을 재점검하는 일은 요원해진다. 민심과 유리된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더욱 떨어뜨리고, 이에 따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수준’을 말하기 전에 이젠 국민이 ‘대통령의 수준’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