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협상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과 ‘슈퍼 경제대국’ 미국의 일대일 무역 협상이라는 점에서 양자 간 협상력의 차이가 크다. 당연히 결과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존재한다. 협상에 들어가기 전부터 찬반 논란이 가열되는 이유다.
그러나 5∼10일 미국 워싱턴에서 1차 본협상이 열린다. 화살이 시위를 떠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찬반 논의를 떠나 한번쯤은 성공적인 FTA 협상을 위한 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 가지로 요약해 본다.
한미 FTA 시작의 특성부터 살펴보자. 한미 FTA의 출범은 ‘톱 다운’식이었다. 1월 18일 대통령 신년 국정연설에서 처음 언급된 후 불과 보름 만에 협상 출범이 공식화됐으며, 이 과정에서 국내 이해관계자 설득이 생략됐기에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지속적인 국내 설득을 병행해야 한다. 이 점에서 ‘톱 다운식 개혁’은 정책의 일관성, 투명성 및 지도자의 추진력이 어우러져 소신 있는 책임정치를 요구한다. 경제 개혁을 통한 선진국 진입을 위해 정치적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큰 정치’가 필요하다. 성공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한미 FTA는 양국 간 통상 확대뿐 아니라 ‘쌀시장’과 ‘개성공단’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혼재돼 있다. 당연히 여러 각도에서 의미를 평가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쌀과 관련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쌀시장 개방 유예 재협상 결과를 미국 측이 인정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개성공단 문제는 한-싱가포르, 한-아세안(ASEAN) FTA 체결 시 양허 사례를 활용해 미국의 양보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두 가지 쟁점은 국내의 합의를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둘은 한국 정부가 국내 협상과 대외 협상을 비교적 수월하게 이끌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역으로 두 쟁점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엔 협상을 그르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정부의 미국에 대한 마지노선 전략이 오히려 국내 협상의 마지노선이 돼 역풍을 맞을 수 있다. 17개 분과별 쟁점 하나하나가 모두 똑같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경제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논의를 가능한 한 협상 일정상 뒤로 미루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협상 과정에서는 쟁점별 선후경중(先後輕重)을 고려한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두 번째 성공 조건이다.
경제성장의 7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에 있어 한미 FTA는 21세기 한국 경제의 생존 전략의 중심축으로 볼 수 있다. 비록 2004년 이후 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 비중이 중국과 일본에 이어 3위로 하락하고 있으나 아직도 미국 시장은 여전히 중요한 수출 시장이다. FTA를 통해 두 마리 토끼인 경제와 안보를 잡는 전략이 성공할 경우 외국인 투자 확대는 물론 무역전환 효과를 우려하는 주요 교역국을 FTA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미 FTA는 한국의 ‘전방위적 FTA’ 추진 전략에도 주요한 전술이 된다. 서비스 시장 개방을 통한 서비스 산업 고부가가치 제고 전략은 미래 성장동력으로서의 서비스 산업 혁신을 촉발하고 내수시장 기반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차도살인(借刀殺人·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임) 격이다. 한미 FTA를 통해 수출과 내수가 두 성장축으로 기반이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존 전략의 실천에는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고통을 최소화하려면 끊임없는 내부 개혁과 경쟁력 제고 노력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한미 FTA를 이루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이다.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