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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0년 멕시코 월드컵서 관중 권총결투

입력 | 2006-06-07 03:00:00


1970년 6월 7일 멕시코 아즈테카 스타디움. 10만3000여 관중이 만원을 이룬 가운데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선혈을 내뿜으며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월드컵 사상 가장 어처구니없는 골이 비극의 원인이었다. 멕시코의 상대국은 엘살바도르. 전반 44분. 엘살바도르가 얻어낸 프리킥을 갑자기 멕시코 선수가 걷어찼고, 공은 엘살바도르의 골문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집트인 주심 알리 칸딜은 이를 적법한 멕시코의 골이라고 인정했다. 경기를 거부하다 우여곡절 끝에 경기장으로 돌아온 엘살바도르 선수단은 후반전에서 무력하게 무너지며 0-4로 패퇴했다. 경기장 안팎 4만 군중의 움직임이 폭동으로 번져 가려는 찰나, “우리가 실력으로 승리한 것” “심판이 봐 줘서 이겼다”라는 두 멕시코인의 말다툼이 권총 결투로까지 내달았다. 갑자기 생긴 멕시코인 희생자 때문일까. 다행히 엘살바도르 관중의 폭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본선에 오른 엘살바도르는 예선에서 온두라스와 ‘축구 전쟁’까지 치르고 올라간 팀. 엘살바도르는 최종 예선에서 국경 분쟁을 겪던 온두라스에 3-2로 승리하자 그 여세를 몰아 전쟁을 선포했다. 두 나라의 전투기는 국경의 하늘에서 불을 뿜었다. 축구 대결이 도화선이 되어 진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전대미문의 ‘축구 전쟁’으로 알려진 이 싸움은 당황한 미주기구(OAS)와 유엔이 긴급회의를 열고 정전을 호소한 끝에 사망자 2000명을 내고 중지됐다.

이후에도 월드컵 경기장 주변에서 유혈 사태가 끊이지 않았다. 스페인 월드컵이 벌어진 1982년 6월 16일에는 난데없는 수탉의 피가 중계방송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잉글랜드 관중이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상징인 수탉을 즉석에서 죽여 프랑스 골문 뒤쪽에다 집어던진 것.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자책골을 넣은 콜롬비아의 에스코바르 선수가 2주 후 보고타의 한 술집에서 광적인 축구팬에게 7발의 흉탄을 맞고 절명했다.

끊이지 않는 월드컵 폭력은 ‘풋볼이 아니라 풋복싱’, ‘축구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오명을 낳기도 했다. 또한 경기 결과를 보고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키거나, 허탈감에 빠져 자살하는 축구팬도 종종 생겨난다. 한밤중에 중계되는 이번 독일 월드컵. 전문가들은 밤낮이 바뀐 상태에서 과도한 음주나 감정적 흥분은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고 국내 팬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