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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열기 속으로 30선]유럽 축구 기행

입력 | 2006-06-08 03:00:00


《이탈리아나 스페인, 혹은 네덜란드인들에게 축구가 ‘취미’ 내지는 ‘대리전투’라면 영국인들에게 축구는 일상의 다른 이름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나씩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갖고 있다. … 응원하는 팀과 선수들은 이들에게 가족과 같은 존재다. 따라서 선수들이 경기장 위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비난보다는 격려가 앞선다. ―본문 중에서》

작년 초 유럽여행길에 나는 굳이 스페인의 소도시 소리아를 행선지에 넣었다. 당시 소리아를 근거지로 하는 누만시아 팀에서 뛰고 있던 이천수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싶어서였다. 인구 4만 명의 소도시에 1만 명을 수용하는 축구장이 있다기에 입장권이나 숙박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찾았는데, 상대팀이었던 아틀레틱 빌바오의 서포터들이 몰려와서 경기 입장권도, 소도시의 숙박업소도 모두 점령해 버렸다. 결국 이천수 선수의 경기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붉은 줄무늬의 유니폼을 입은 빌바오의 서포터들로 도시 전체가 가득했던 소리아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있다.

축구의 원조국으로서 유럽 축구의 위상은 이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지만,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서 시작해 프리미어리그에 연착륙한 박지성과 이영표를 비롯해 안정환, 설기현, 차두리, 이을용처럼 유럽에서 뛰는 선수가 많아지면서 멀게 느껴지던 유럽 리그는 우리에게 확실히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비선수 출신 해설가, 최연소 축구 해설가로 축구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던 서형욱의 이 책, ‘축구 저널리스트 서형욱의 유럽 축구 기행’은 우리가 궁금해하던 유럽 축구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다. 저자가 처음 축구를 좋아하는 배낭여행객으로 유럽에 발을 디뎠던 기억부터 시작해 리버풀에서 축구산업학으로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좀 더 폭넓고 다양하게 찾을 수 있었던 유럽 축구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얇지 않은 책을 속도감 있게 넘기게 만든다.

이 책이 더 반가운 것은 유럽축구 전문가로서의 지식과 축구팬, 혹은 유럽여행객으로서의 감상이 잘 조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향 팀에서 마지막 힘을 쏟기 위해 첼시를 떠나 이탈리아 2부 리그 칼리아리의 유니폼을 입었던 졸라와 이탈리아까지 날아가 그를 변함없이 성원하는 첼시 팬들의 이야기, 생애 단 한번이라도 우승컵을 들어보기 위해 피오렌티나를 떠나 AS로마로 이적했지만 친정팀의 골대를 향해 골을 넣고 눈물을 흘렸던 바티스투타의 이야기…. 첼시 팬숍에서, 피렌체의 피오렌티나 홈구장에서 저자가 풀어내는 이런 이야기들에서는 오랜 전통만큼이나 인간적인 유럽 축구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또 페루자에서, 밀라노에서, 소리아에서 숙소와 입장권과 교통편 때문에 힘들어했던 실수담은 나 자신의 경험과 겹쳐 입가에 웃음을 띠게 만들었다.

국가대표팀에 주로 열광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각자가 응원하는 축구 클럽이 유럽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잘 드러나 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유럽 선진 축구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축구가 4년에 한 번 오는 이벤트가 아니라 평소의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 역시 이 책을 덮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상일 것이다.

신명주 방송통신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