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채석장 인근 물가에서 끈으로 묶인 시신 2구가 발견됐다. TV에서라면 ‘CSI 과학수사대’가 나서서 사건을 착착 풀어나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건이 일어난 때는 1913년이었다.
경찰이 사건 해결을 위해 도움을 청한 사람은 당시 에든버러대 병리학 조교수였던 시드니 스미스(1883∼1969)였다. 검시 후 스미스는 시신을 각각 7, 4세 정도의 남자아이로 추정했다. 입은 옷이 비슷하고 제조회사도 같아서 형제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입고 있는 셔츠에 찍혀 있는 인근 구빈원 마크도 발견했다.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것은 시랍(屍蠟·시체가 수분이 많고 공기의 유통이 차단된 환경에 오래 놓여 있을 때 시체에 생기는 납처럼 생긴 물질)이었다. 아이들의 시신이 오랫동안 물에 잠겨 있어서 몸속의 지방은 시랍으로 전환됐고, 이 때문에 위에 든 내용물이 남아 있었다.
“소화되지 않은 채소들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완두콩, 보리, 감자, 부추 등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식단으로, 죽기 한 시간여 전에 식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미스는 시신이 18∼24개월 물에 잠겨 있었고 위에 든 채소가 여름이나 가을에 나온다는 사실을 토대로,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시점은 1911년 여름이나 가을쯤이라고 추정했다. 수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1911년 11월 구빈원에 맡겨져 있던 두 형제가 갑자기 행방불명됐음이 확인됐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패트릭 히긴스라는 노동자로 엄마 없는 아이들을 구빈원에 맡겨 놓고는 떠돌아다녔으며 그해 11월 어느 날 밤 두 소년을 찾아와 야채수프를 주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가 나타났다.
희대의 자식 살인범 히긴스는 6월 8일 체포돼 유죄판결을 받았고 그해 10월 교수형을 당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대단치 않지만 스미스가 찾아낸 ‘법의학적’ 증거물들은 당시로선 대단한 것이었다. 유럽에서 과학수사는 19세기부터 진행되긴 했지만 스미스는 이 분야를 적극적으로 개척한 사람으로 이름을 남겼다.
수많은 살인사건에서 스미스는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해 범인을 붙잡는 데 기여했다. 외화 시리즈 ‘형사 퀸시’(주인공 의사 퀸시가 범죄의 증거를 찾는 내용)의 이름을 따서 그는 ‘20세기 최초의 퀸시’라고 불린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