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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열기 속으로 30선]피버 피치

입력 | 2006-06-09 03:04:00


《나는 축구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마치 훗날 여자들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될 때처럼 느닷없이, 이유도 깨닫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축구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그 사랑 때문에 앞으로 겪게 될 고통이나 분열 상태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었다. 1968년 5월이라고 하면 누구나 유럽 전체를 뒤흔든 파리 학생 폭력 시위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축구 선수 제프 애슬이 떠오른다. ―본문 중에서》

내가 ‘피버 피치’를 처음 만난 것은 1월 초였다. 1월 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의 경기가 있기 전에 나는 모 방송국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의 라이벌전이 갖는 의미와 전망에 대해 10분 정도 해설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에 대해서는 박지성이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서 이적해 갔을 때부터 자료를 수집해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아스널 팀에 대해서는 프랑스의 티에리 앙리가 뛰고 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못지않게 명문 팀이라는 정도밖에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스널 팀에 대해 정보를 구하던 중 아스널의 열혈 팬이며 포스터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닉 혼비의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겨우 김빠지는 경기 한 편을 보고 아스널에 반해 버린 후로 평생 축구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축구에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축구광의 이야기다. 세계 최고 인기 스포츠 종목인 축구, 그것도 특정 팀 아스널의 진정한 팬이 되어가는 이야기가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혼비의 인생은 축구, 그것도 아스널 팀을 중심으로 맴돈다. 학교생활, 결혼, 아이의 탄생, 작가 입문 등 모든 것이 아스널 팀과 연관되지 않은 일이 없다.

그래서 혼비는 “아스널은 지난 내 인생의 전부였으며 앞으로의 인생에도 아스널이 나의 전부일 것”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본문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팬이 된다는 것은 대리 만족이 아니며, 구경을 하느니 직접 축구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축구를 보는 것은 결코 수동적인 활동이 아니며, 실제로 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책은 축구에 대해 문외한이 읽더라도 전혀 어렵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데, 그것은 일상의 재미있는 일화를 통해서 저자 혼비가 축구 문외한에서부터 전문가적 수준까지 오르는 과정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축구를 그저 팬의 입장에서 아마추어 시선으로만 본 게 아니라 축구 경기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팬의 입장에서 매우 발전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혼비가 목숨처럼 사랑했던 아스널의 홈구장 하이버리 경기장은 2005∼2006년 시즌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이버리 경기장은 아스널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나, 120년이나 된 경기장인 데다 또 수용 인원도 3만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아 관중 수입 면에서 이익이 되질 않았고, 7만 명 정도를 수용하는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에 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이전을 하게 된 것이다. 과연 혼비는 아스널의 새로운 홈구장인 에미리트 경기장 근처로 또 이사를 갈까? 그가 새 경기장에서는 또 어떤 추억을 만들게 될지 무척 궁금하다.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