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콘돔 전문 숍으로 문을 연 ‘콘도매니아’. 실내가 밝고 여성들도 자주 온다는데서 성의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변영욱 기자
《“과연 들어가는 손님이 있을까?”
“있으니까 장사하겠지. 그런데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들어가기 어려울걸.”(웃음)
지난달 30일 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앞에 있는 국내 첫 콘돔 전문 가게 ‘콘도매니아’ 앞을 지나가던 20대 여자 두 명이 주고받은 대화다.》
지난해 12월 개점한 콘도매니아는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창문도 넓고 투명해 밖에서도 다 들여다보인다. ‘투명성’ 때문에 고객들이 망설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성찬 대표는 “첫달에는 하루 평균 매출이 10만 원 정도였으나 3월부터 20만∼25만 원을 유지하고 있고 지난달에는 홍익대 앞에 가맹점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달 하순경에는 3개의 가맹점이 늘어날 예정.
이 대표에 따르면 고객의 90%가 20, 30대이며, 65∼70%는 여성이라고 한다. 낮시간에는 구경오는 여대생들도 적지 않다. 최근 인기 제품은 일본에서 수입한 ‘스킨레스 3000’ ‘사정지연 롱러브’다. ‘스킨레스 3000’은 두께가 0.015mm로 가장 얇은 제품이다. ‘사정지연 롱러브’는 국산 제품으로 남성 성기의 예민함을 감소시키는 벤조카인이 함유돼 있다.
고객 중 지난달 30일 오후 6시 반∼10시 이곳을 찾은 13명을 인터뷰했다.
○ 할인마트와 다를 게 없다
오후 7시경 손을 잡은 커플이 당당히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떤 제품 찾으세요?”라고 매장 직원이 말하기 무섭게 남자는 “얇은 것으로 보여 주세요”라고 말했다.
같이 온 여자도 점원이 추천한 콘돔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색깔이 화려한 제품도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연인이라지만 쑥스럽지 않으냐’고 물어봤다.
“결혼한 지 1년 된 부부입니다. 콘돔은 신혼부부에게는 생필품이잖아요. 가전제품이나 식료품 사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할인마트 가는 것과 같아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아요.”(34·남편·회사원)
아내(30·주부)는 더 솔직하다.
“열심히 사랑하고 서로 배려하는 거니까 자랑할 일이죠. 남편만 좋다고 하면 실명도 밝힐 수 있는데 아쉽네요.”(웃음)
이들은 15분 정도 둘러본 뒤 ‘스킨레스 3000’을 구입했다.
○ 이벤트용입니다
20대로 보이는 여자 3명이 왁자지껄 떠들며 들어왔다.
이들은 들어오자마자 팬시 콘돔 코너로 갔다. 이곳에는 우유팩 계급장 담뱃갑 모양의 상자 안에 콘돔을 넣어 판매한다.
“우유팩 안에 콘돔이 있네.” “화투 모양 상자는 뭐냐….” “군대 가니까 계급장으로 할까?”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대학 3학년인 이들은 군대 가는 애인을 둔 친구에게 선물로 주겠다며 계급장과 우유팩 콘돔을 샀다.
김모(22) 씨는 “곧 군대 가는 애인과 열심히 추억을 만들고 있는 친구에게 잠자리에서도 추억을 만들라는 뜻으로 팬시 콘돔을 선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장디자인이 특이한 팬시 콘돔은 여성 고객의 60%가 구입하며 선물용으로 사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이 나가자마자 20대 남자 2명이 들어왔다. 근처에서 지켜보며 여대생들이 나가기를 기다린 듯했다.
“특이하지만 너무 깨지 않는 거, 재미있는 걸로 보여 주세요.”
한모(21·대학 2년) 씨가 특이한 걸 찾는 이유는 사귄 지 1년이 다 된 여자친구가 아직도 성관계를 가질 때 어색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재미있는 이벤트 분위기를 내는 콘돔으로 어색함을 없애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 이 가게에 들어오는 게 어색해 친구와 함께 왔다. 10여 분간 둘러본 그는 파란색 콘돔인 ‘뉴쥴리’와 껌처럼 포장된 팬시 콘돔을 구입했다. 계산을 하면서 “좋은 이벤트가 됐으면 좋겠다”며 수줍게 웃었다.
○ 여자친구와 같이 들어오긴 힘들어
잠시 후 20대 남자 한 명이 머뭇거리다 들어왔다. 매장 직원을 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직원이 밝은 목소리로 “직접 쓰실 거 찾으세요? 선물용 찾으세요?”라고 묻자 작은 목소리로 “제가 쓸 건데…여자들한테 편한 걸로 주세요”라고 답했다. 두께가 얇거나 겔이 많이 묻은 콘돔을 추천하는 직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는 자주 매장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자친구도 왔는데 부담스럽다고 해서 나만 들어왔어요. 친구는 밖에서 기다려요.”
사진작가라고 밝힌 그(29)는 약국이나 자판기에서 산 콘돔의 느낌이 좋지 않다고 여자친구가 불만을 털어놓자 용기를 냈다. 여자친구 양모(23) 씨는 “결혼 안 한 커플이 함께 콘돔을 고르는 게 좋게 보이지 않아 들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오후 10시경 매장의 문을 닫으려 하자 남자 2명이 급히 들어왔다. 취기를 풍기는 이들은 사정지연 콘돔을 찾았다. 20대 중반의 휴학생이라고 밝힌 이들에게 용도를 묻자 “나이트를 갈 것 같아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이벤트’를 위해 샀다”고 말했다.
○ 섹스의 주도권도 여성에게로
이날 콘돔 전문 가게에서 만난 이들은 개방된 분위기에도 어색해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 같은 경향은 젊을수록 더욱 뚜렷했다. 이들은 기자의 질문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전문가들은 콘돔 전문 가게의 확산을 섹스의 주도권이 여성에게로 넘어가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의 박기수 교수는 “콘돔을 일상용품과 다르지 않게 생각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팬시 콘돔’ ‘나만의 콘돔’을 쓰는 이들이 트렌드세터로 인정받는 세태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명지대 기록대학원의 김정운(문화심리학) 교수는 “여대 앞에 콘돔 전문 가게가 생겼고 주 고객도 여성이라는 사실은 섹스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콘돔도 여성용품으로 여긴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