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낮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집에서 열린 ‘종가 맏며느리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맏며느리들. 홍진환 기자
9일 낮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집.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혹은 양장을 단정하게 입은 여인들이 모여들었다. 문화재청의 초청을 받고 온 전국 유명 종가(宗家)의 맏며느리들이다.
이날 온 사람들은 경북 안동시의 서애 류성룡 종가, 광주의 고봉 기대승 종가, 충남 논산시의 사계 김장생 종가 등 38개 종가의 종부와 차종부, 종손 등 65명. 고택(古宅), 전적(典籍) 등의 문화재를 보유하거나 독특한 관혼상제(冠婚喪祭)와 음식문화를 보존해 온 종가가 초청 대상이었다.
전통과 문화유산을 지켜오는 종부(宗婦)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종가를 지키기 위해 겪는 어려움을 청취해 개선안을 찾는다는 취지로 문화재청이 마련한 행사였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종가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것을 묻자 종부들은 앞 다퉈 손을 들었다. 종갓집 운영에 “규제만 있고 혜택은 없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특히 문화재로 지정된 종갓집들은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광명시 오리 이원익 종가의 종부 함금자(67) 씨는 “한옥을 보수하려면 사진 찍고 공문서 작성해서 신청하고 공무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1년은 걸린다”면서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 동구의 경주 최씨 백불암 최흥원 종가 종손인 최진돈(55) 씨는 “국가가 종가를 문화재로 지정했으니 국가가 가져가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종가 맏며느리가 겪는 애환을 내비치기도 했다. 전남 담양군 선산 유씨 문절공 유희춘 종가의 종부 노혜남(77) 씨는 “종가를 유지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헤아리기보다는 잡초만 보이면 종부 탓을 하더라”고 털어놓았다. 경북 봉화군 충재 권벌 종가의 손숙(60) 씨도 “옛날처럼 하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옥 돌보는 일을 기꺼이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며 “결국 며느리들이 다 손봐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 청장은 “상당수 종가가 지방문화재여서 문화재청이 직접 지원하기 힘들지만, 정부에서 ‘문화재관리보수단’을 설립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유 청장의 형식적인 대답이나 이벤트성이 짙은 행사 자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평생 인내와 자애로움을 지켜온 사람들답게 종부들은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보성 선씨 영흥공 선병국 종가 종부 김정옥(53) 씨는 행사장을 나서면서 “이렇게 밖에 나온 것만으로도 쉬는 것”이라며 웃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