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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대우건설 근로자 석방 협상 뒷얘기

입력 | 2006-06-10 03:00:00


7일 오전 나이지리아 포트하커트의 대우건설 사무소에 출근한 현지인 K 씨는 사무소장인 이홍재 상무의 긴급 지시를 받았다.

고속정으로 50분 떨어진 코손 유전지대에 있는 대우건설 가스플랜트 공사 현장에서 한국인 직원 5명과 현지인 1명이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됐으니 비상 연락망을 구축하라는 것.

K 씨는 곧 자신이 속한 부족의 친구들과 무장괴한들이 속한 ‘이자(ijaw)’ 부족 관계자 등 10여 명으로 구성된 ‘협상조’를 만들었다.

○ “밥은 먹였어?”

K 씨는 수차례의 전화통화 끝에 피랍 직원들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곧이어 괴한들이 아침 식사를 제공했다는 소식도 들어왔다. 이 소식은 현장사무소를 거쳐 서울 대우건설 본사 피랍 직원 비상대책반에 보고됐다.

7일 오후 10시 반(현지 시간 7일 오후 2시 반). 피랍 직원들의 소재 파악에 분주하던 외교통상부와 국가정보원은 대우건설 측의 연락을 받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가 지나 괴한들이 피랍 직원들을 석방할 뜻이 있다고 언론에 밝힌 8일 오후(현지 시간).

포트하커트 사무소에서 다시 대책회의가 열렸다. 나이지리아 리버스 주(州) 정부를 도와 괴한들과 협상에 나설 사람을 뽑기 위해서였다. 토론 끝에 K 씨가 대우건설의 대리인으로 나서기로 했다. 이에 앞서 그가 괴한들이 나이지리아 정부에 석방을 요구한 자신들의 지도자 도쿠보 아사리를 전화통화로 접촉한 것도 높게 샀다.

포트하커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이지리아 주정부 인사들과 함께 괴한들을 만난 그는 협상장 밖에서 기다리던 대우건설 직원들에게 “괴한들이 피랍 직원들에게 식사로 볶음밥을 제공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얼마 후 피랍 직원들은 풀려났다.

○ 장례식에는 반드시 간다

9일 0시 20분경 피랍된 한국인 직원들이 40시간 만에 풀려난 것은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은 나이지리아 주정부의 긴밀한 협조와 함께 대우건설이 쌓아 놓은 현지의 인적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했다.

대우건설은 1980년대 초 나이지리아 진출 후 현지화 작업에 주력했다. 피랍 사건이 발생한 코손 유전지대 가스플랜트 시설을 비롯해 대부분의 공사 현장에는 직원의 절반 이상을 나이지리아인으로 충원했다.

대우건설은 부족의 주요 행사를 챙기는 것은 물론 종종 화장실 개조 공사까지 해 준다. 특히 이곳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장례식에는 반드시 참석했다.

외국인을 경계하는 현지인들도 이런 노력에 감화를 받았다. 2003년 8월 당시 대우건설 김우성(45) 과장은 포트하커트 인근 에자마 부족에게서 추장 칭호를 받기도 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