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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오래가는 제도’가 되려면

입력 | 2006-06-11 22:17:00


작년 부동산 투기와 ‘전쟁’ 중이던 청와대가 ‘오래가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순진하게도 ‘노무현 정부가 드디어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을 내놓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글로벌 시대, 규제 완화 추세, 생활 속에 파고든 인터넷 등 메가트렌드(megatrend)를 반영한 멋진 제도가 나와 수십 년 생명력을 발휘하게 되는가 보다 싶었다.

웬걸, 알고 보니 작년 ‘8·31 부동산 종합대책’ 수립 당시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의 구상은 제도의 이해(利害) 관계자를 만들어 놓는 방식이었다. 제도나 정책에 따라 부담을 지는 사람과 혜택을 받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부담을 지는 쪽에선 제도의 문제점을 공격하고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제도를 지켜 내려 할 것이다.

김 씨가 말한 ‘헌법만큼 고치기 어려운 제도’의 착안점도 바로 이것이다. 강화된 종합부동산세로 거둔 세금을 재정이 어려운 지방자치단체에 나눠 주면서 ‘이 제도가 유지돼야 돈을 계속 받을 수 있다’고 언질을 주는 것이다. 어차피 지방에 재정지원을 하게 돼 있으니 돈에 꼬리표를 달아 미끼로 쓰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의 어떤 고가(高價) 아파트 주인들은 지방 어떤 군(郡)의 살림살이를 지원해야 한다. 빈민층에 돈을 받아 쓸 수 있도록 고가 아파트를 하나씩 찍어 주는 극단적인 방식을 약간 순화한 것이다.

종부세 세수를 나눠 받게 될 가난한 140개 지자체를 김 씨는 ‘종부세의 수호천사’로 불렀다. 종부세 폐지 논의라도 시작되면 수호천사들이 상경 시위라도 벌여 주길 김 씨는 기대했을 것이다. 그는 부동산 양도소득세도 이렇게 지방과 묶어 놓지 못한 것을 서운해 했다. ‘제도 지킴이 데모꾼’을 여기저기 만들어 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김 씨가 부동산제도마다 수호천사를 붙여 두려 했던 것은 징벌성 세금폭탄에 기초한 ‘김병준 제도’가 문제투성이란 점을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겐 안됐지만, 이런 제도는 오히려 고치기 쉬울 수도 있다. 지자체에 다른 돈을 끌어다 주면 될 일이다. 재정 형편이 어려운 지방에 올해도 정부가 21조 원을 지원하는데 이런 구조도 장차 수술대에 오를 것이다. 수호천사 체제도 개편 대상이 된다는 얘기다.

결국 김 씨는 다음 국회나 정부보다는 자신의 판단이 더 옳다고 믿은 나머지 다음 국회나 정부를 골탕 먹이는 일을 한 셈이다. 위정자의 잘못된 확신은 미래 세대에 부담과 후유증을 남긴다. 그는 ‘부동산 정상화를 위한 시민사회 차원의 또 다른 운동’도 주장했다. 설마 친(親)정권 시민단체에 부동산에서 거둔 세금을 나눠 주고 ‘세금폭탄’의 수호천사 역할을 주문하려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편싸움 방식을 구상한 것 같다.

그는 ‘부동산 4적(敵)’이라며 부동산 투기 열풍의 책임을 복부인, 기획부동산업자, 건설업체, 일부 신문에 돌리고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정책의 실패는 외면했다. 미래를 내다보기는커녕 현재 상황 인식도 엇나갔다.

고치기 어려운 제도가 오래가는 게 아니다. 문제점이 제때 고쳐지지 않아 국민 후생에 피해를 줄 뿐이다. 그보다는 시장(市場)과 국민 창의력을 존중하는 제도가 진정 생명력 있는 제도라는 사실을 김 씨 혼자만 모르는 것 같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