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현대무용가 린러너 씨가 선보인 티베트 전통춤. 1974년부터 티베트 전통춤 13개를 전수받은 린러너 씨는 공연을 마친 후 “우리 모두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사진 제공 죽산예술제
무용가 홍신자 씨와 헬레나 노르베르호지 씨, 인위전 바이완샹 씨 부부(왼쪽부터). 전승훈 기자
《“쟁∼ 쟁∼ 쟁.” 9일 오후 5시. 경기 안성시 죽산면 용설저수지 주변 야외무대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2-2호 서해안 배연신굿 예능보유자 김금화 씨가 한바탕 신명나는 굿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저 멀리서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우르릉 우르릉 천지를 울리는 천둥소리.》
야외무대 천장에 설치미술가 전수천 씨가 노란색, 흰색 천으로 만들어 달아놓은 작품은 바람에 깃발처럼 휘날렸고 100여 명의 관객들은 천장이 들썩들썩할 때마다 “워∼” 하는 탄성을 질렀다.
하늘에서 엄지손가락만 한 대형 우박까지 쏟아지자 천들은 북북 찢어졌지만 굿은 자연의 소리를 배경음으로 삼아 멈추지 않고 정점으로 치달았다. 관객들은 크리스털처럼 빛나는 우박 조각을 줍기도 했고, 온몸이 폭우에 흠뻑 젖는 것도 모른 채 강강술래를 추며 한 시간 동안 대동굿을 즐겼다.
9∼11일 열린 제12회 ‘죽산예술제’(예술감독 홍신자)는 이렇듯 자연과 인간,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거대한 퍼포먼스였다. 사흘 내내 오락가락했던 비는 축제의 훼방꾼이 아니라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었다.
예술감독 홍 씨는 “관객과 예술가들이 우주의 에너지를 맘껏 만끽했다”며 흥겨워했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그린 피플’. 예술가뿐 아니라 세계적인 환경운동가들도 축제의 주인공으로 참석했다.
10일 오후에는 인도 북부 히말라야 고원의 라다크 지역에서 16년 동안 지냈던 스웨덴 출신의 생태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르호지(60) 씨가 강연했고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마오우쑤(毛烏素) 사막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인위전(殷玉眞·40·여) 바이완샹(百萬祥·41) 씨 부부의 다큐멘터리도 상영됐다.
스무 살에 사막 마을로 시집간 후 자신의 손으로 나무를 심고, 양동이에 물을 길어 나르며 20년간 1000만 그루의 나무를 키운 아내 인 씨는 “중국 모래들이 한국에 많은 피해를 줘서 죄송하다”며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정성만 들이면 바위에도 꽃이 필 수 있듯이 사막도 숲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책 ‘오래된 미래’의 저자인 노르베르호지 씨는 ‘행복에 이르는 12개의 단계’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라다크 사람들에게서 배운 지혜라며 “매일 잠시라도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만날 것, 여러 세대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것, 음악과 노래와 춤에 참여할 것, 자신에 대해 자비의 마음을 가질 것, 우리 안의 여성성(女性性)을 키워 나갈 것” 등을 제시했다.
축제 기간에는 안성수 픽업그룹의 현대무용 ‘전야’를 비롯해 인도네시아의 그림자 인형극, 티베트의 전통춤, 미국 무용가의 ‘웃음’ 퍼포먼스, 동유럽 유목민들의 불놀이 행위예술 등 세계 각국의 실험적 예술작품이 선보였다. 또 관객 100명이 함께 북을 두들기며 춤을 추는 ‘드럼서클’ 등 관객체험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었다.
뉴욕에서 전위무용가로 활동하다 1993년 죽산에 정착한 홍 씨는 “인공적인 테크놀로지가 가득한 도시보다 우주의 원초적 에너지가 가득한 이곳이 예술가들에게 더 큰 영감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성=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