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11월 4일 실시된 제34대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 상황 소식을 기다리던 미 국민은 깜짝 놀랐다. CBS TV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일방적인 승리를 일찌감치 예측했기 때문이다. 겨우 5% 남짓 개표가 진행된 시점이었다. 더구나 단 1%의 표본으로 결과를 맞혔다. 컴퓨터 덕이었다. 사상 최초인 선거 예측은 컴퓨터의 효용성을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첨단기술은 흔히 군사 목적으로 개발된다. 컴퓨터도 그랬다.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ENIAC)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군이 탄도(彈道) 계산을 빨리 하기 위해 주문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1946년에야 개발을 마쳤지만 사람이 하면 7시간 걸릴 계산을 단 3초 만에 해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에니악에는 진공관 1만7468개, 저항 7만 개, 스위치 6000개가 들어갔다. 이 ‘기계’는 길이 30m, 높이 2.4m, 폭 0.9m, 무게 30t에다 소비전력도 150kW나 돼 한번 가동하면 필라델피아 시내의 전등이 모두 깜빡거릴 정도였다.
에니악을 개발한 펜실베이니아대의 프레스퍼 에커트와 존 모클리는 5년여 뒤 컴퓨터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하나 더 보탠다. 1951년 6월 14일 이들이 개발한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유니박(UNIVAC)을 레밍턴랜드사(社)가 인구통계국에 설치했다. 컴퓨터가 군사 이외의 목적에 이용될 수 있으며 ‘상품(商品)’임을 보여 준 것이다.
CBS의 선거 예측에 쓰인 컴퓨터는 미 원자력위원회에 설치된 5호 유니박이다. 유니박은 에니악과 견주면 매우 작아지긴 했으나 아직도 진공관이 5200개 사용되고 길이 4.3m, 폭 2.4m, 높이 2.6m에 무게는 13t이나 나갔다. 설치하는 데 필요한 면적도 35.5m²나 됐다. 가격도 125만 달러가 넘었지만 1958년까지 46대가 팔렸다.
유니박 이후 진공관 대신 트랜지스터(2세대), 집적회로(3세대), 마이크로프로세서(4세대)가 사용되면서 컴퓨터는 그 덩치가 획기적으로 줄었다. 올해 들어선 780g, 512g짜리 모바일PC까지 등장했다. 1949년 ‘미래의 컴퓨터는 1.5t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파퓰러 메카닉스의 편집자로선 경악할 만한 일이다.
한때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가로 불리기도 한 케네스 올슨 디지털이큅먼트 설립자조차 1977년 “개인이 가정에 컴퓨터를 놓으려 할 이유가 없다”고까지 했으니….
인류는 지금 두루누리(유비쿼터스)에 들어서고 있다.
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