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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칼럼]6·13과 6·15의 사이

입력 | 2006-06-15 03:00:00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승전보로 온 나라가 축제 속에 밤을 지새운 다음 날 이번에는 광주에서 또 다른 축제가 마련되고 있다.

월드컵 축구에서 토고팀에 이긴 6·13 밤에 ‘태극기 휘날리고’ 대∼한민국을 절규하며 축제를 즐겼다면 광주에서 벌이는 ‘6·15 민족통일대축전’에선 태극기를 접고 대한민국의 국호도 거둘 듯싶다. 그게 이젠 낯설지만도 않다.

부산에서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들고 “우리는 하나다” 구호를 외치며 남북한 단일팀이 입장한 2002년 아시아경기대회. 선수단이 입장하면 먼저 주최국 언어, 다음엔 영어로 참가국을 소개하는 것이 국제경기 관례다. ‘중국, 차이나’ ‘일본, 저팬’ 등으로… 마지막에 남북한 단일팀이 입장하면 참가국 소개를 어떻게 할지 몹시 궁금하던 판에 마침내 ‘한반도 팀’이 입장하자 장내 방송은 “코리아, KOREA”라 소개하고 있었다. 그 잘난 ‘주체사상’은 어디로 가고 한국이 아프리카의 옛 영국 식민지처럼 영어 상용 국가로 둔갑했다는 말인지… 어이가 없었다.

알쏭달쏭한 햇볕정책으로 나라의 정체성이 헷갈리고 평화와 통일의 방정식이 뒤틀려 머리가 산란해진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나는 2000년의 6·15남북공동선언,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 등을 내 나름대로 평가해 볼 수 있는 두 가지 점검 기준을 마련해 봤다. 이미 이 칼럼에 적은 일이 있지만 최근 6·13 밤의 행복했던 축제와 6·15의 야릇한 광주 대축전 사이에서 정신이 산란해지는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소개해 본다.

우선 두 기준에 공통되는 전제부터 밝히자면 한반도에 지금 가장 긴요한 것은 ‘통일’에 앞서 ‘평화’다. 북한의 김정일 체제를 인정하고 상대하는 것도 한반도의 평화 때문이지 통일 때문은 아니다. 평화는 적과도 이뤄지지만 통일은 뜻이 맞아야 이뤄진다. 평화의 파트너로서의 김정일 체제를 통일의 파트너로까지 격상하는 데서 모든 혼란은 야기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3대 요건부터 적어 보면 이렇다. 첫째, 햇볕정책으로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성이 제거되고 평화가 정착되었는가. 둘째, 방북 관광 따위가 아니라 이산가족을 포함한 남북한의 모든 주민이 자유롭게 상호 방문할 수 있게 되었는가. 셋째, 그럼으로써 당과 정부의 고위층이 아니라 어려운 북한 동포들의 삶이 더 윤택해지고 더 자유로워지고 있는가.

그 다음 출발부터 말도 많은 노무현 정권의 정책을 점검해 보는 3대 요건을 적어 본다.

첫째, 노무현 정권은 대한민국의 국가와 국헌과 국민을 수호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

둘째, 노무현 정권은 정치 경제 사회 이념의 여러 차원에서 국민을 통합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

셋째, 노무현 정권은 경제 개발을 통해 고용 기회를 창출하여 국민 복지와 국가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가.

물론 위의 두 가지 점검 기준은 반드시 김대중 노무현 정권만이 아니라 과거의, 그리고 미래의 모든 정권의 행적을 평가하는 데도 유효한 기준이 될 것이다.

참고로 2002 한일 월드컵 때의 에피소드 한 토막. 월드컵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던 6월 2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는 방한 중인 독일의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한독 포럼이 창립됐다. 당시 라우 대통령을 수행한 독일 기자들은 햇볕정책 때문에 월드컵 같은 큰 행사도 무사히 치를 수 있게 됐다는 정부의 홍보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아침 포럼 회의장은 서해교전으로 많은 우리 해군 장병이 희생됐다는 뉴스에 얻어맞았다. 햇볕정책 없이도 88올림픽을 끝까지 평화롭게 치른 한반도에서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한마디만 더. 광주의 6·15 대축전에서 태극기 대신 한반도를 그린 백기가 펄럭인다면 국립5·18민주묘지에 묻힌 영령들은 그를 어떻게 볼 것인지…. 국민을 도륙하면서 정권을 도득하려던 살기등등한 신군부에 저항하면서 절망적인 순간을 기다리던 시민군이 부른 노래는 대한민국의 애국가가 아니었던가. 신군부의 총검에 희생되어 싸늘한 시신이 된 그들의 관을 덮고 있던 것은 백기도 한반도기도 아니라 태극기가 아니었던가.

최정호 객원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