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대 학생식당에서 일본학생들과 외국학생들이 어울려 점심을 먹고 있다. 이 대학은 전교생의 40%가 74개국에서 온펱 유학생이다. 벳푸=서영아 특파원
일본 규슈 벳푸 시 리쓰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APU) 캠퍼스는 일본대학답지 않게 교정이 널찍하고 교사는 갓 지어 산뜻하다. 벳푸=서영아 특파원
《“일본에 진출한 P&G와 암웨이의 차이는 뭔가.” “P&G는 기존방식으로 물건을 판매했지만 암웨이는 일대일 ‘직접 마케팅’으로 게임의 룰을 바꿔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지난달 23일 오전 8시 반.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비즈니스 여건’의 수업이 진행 중인 대형 강의실. 아시아 학생들 사이사이에 백인이나 흑인, 히잡을 둘러쓴 여학생들이 앉아 있다. 100분 수업은 영어로 진행됐다. 야마모토 스스무(山本晋) 교수가 학생들 사이를 오가며 문답식으로 진행하는 강의에 캐나다인 한국인 중국인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
일본 규슈(九州)의 온천도시 벳푸(別府) 시. 벳푸 만을 내려다보는 구릉 위 12만여 평의 부지에 리쓰메이칸(立命館) 아시아태평양대학(APU)의 갓 지은 교사가 늘어서 있다. 일본대학답지 않게 널찍한 교정에서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오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일본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시아태평양학과 아시아태평양매니지먼트학의 학부와 대학원이 설치된 이 학교는 전교생 4752명 중 40%가 74개국에서 모인 유학생이다. 이 중 80% 이상은 한국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출신이지만 아프리카나 동유럽 등에서 온 학생들도 섞여 있다. 교원도 절반이 외국인. 몬테 카셈 학장은 스리랑카 출신이다.
2000년 개교한 이 학교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학교를 짓기 전에 여러 기업으로부터 40억 엔의 장학기금부터 조성했다. 겨냥한 것은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학생들. 우수학생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현지에 직원을 보낸다. 수업료는 연간 124만 엔 안팎이지만 외국인 학생은 성적에 따라 수업료가 30∼100% 감면된다.
졸업할 때까지 영어와 제2외국어를 마스터하고 전 세계에 ‘동창생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는 매력에 일본인 고교생들도 국내 유학을 간다는 생각으로 지원한다. 안내를 맡은 사무국 직원은 “‘대학이란 노는 곳’으로 알고 있던 일본 학생들이 외국 학생들이 맹렬히 공부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책을 잡는다”고 귀띔한다.
학교의 성공은 2004년 첫 졸업자들의 취업 성적으로 나타났다. 취업을 희망한 유학생 전원이 일본의 일류 대기업이나 자국 내 일본계 기업에 취직했다. 일본인 학생은 이보다는 낮지만 92.6%가 취업했다. 2005년 졸업자도 외국 학생은 99.2%, 일본학생은 97.8%가 바로 직장을 얻었다.
학교 측은 “높은 취업률의 이유는 세계 각국으로 뻗어나간 일본의 대기업들이 영어와 일본어가 가능하고 현지 주류 사회와 다리 역할도 해줄 국제화된 학생들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학교 측은 특히 한국과 중국계의 우수한 학생이 급증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실제로 유학생을 출신국별로 보면 1위는 500여 명에 이르는 한국이고 중국이 300여 명으로 2위다. 학교 측은 현재 74개국인 학생들의 출신국을 100개국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입학 전형에선 영어를 선택하는 사람이 유학생의 70%에 달한다. ㈜스미토모(住友)화학에 취업이 확정된 김민주(24·여) 씨도 2001년 영어로 응시했지만 지금은 일본어건 영어건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대학 4년간 생활비까지 지급받는 특별장학생이었던 그는 외국학생들과 팀을 짜 진행하는 수업에서 커뮤니케이션 방법과 자신감을 배웠다고 말한다. “외국인들은 의견을 많이 내놓지만 한국이나 일본 학생들은 소극적이죠.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점차 적극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성격으로 바뀌었어요. 이제 세계의 누구를 만나도 의사소통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개교 당시부터 학교이념은 ‘다문화, 다언어 환경’이다. 카페테리아에 가면 인도의 카레, 한국의 젓갈, 대만의 향신료 등 각국 전통음식을 판다. 나라별로 돌아가며 풍속과 음식 등을 소개하는 주간이 되면 식당의 메뉴도 그 나라 것 위주로 바뀐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세계를 접하며 다양한 문화를 몸에 익히는 사이 학생들은 넓은 시야를 가진 글로벌 인재로 성장한다.
1학년생들이 의무적으로 들어가는 기숙사는 다문화를 피부로 배울 수 있는 현장. 기숙사 1층 로비에서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트남 나이지리아 태국 출신의 학생들을 만났다. 대화는 영어를 중심으로 중간중간에 일본어를 섞어 쓰는 식이다. 모두가 “장학금이 없었다면 여기서 공부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미얀마의 마웅마웅탄(39) 씨는 외교관 출신. 돌아가면 다시 미얀마 외교부에서 근무하게 된다. 태국에서 온 타트리(25) 씨는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알라비(21) 씨는 일본에 대해 공부하고 돌아가 외교관이 돼 일본과 나이지리아의 교류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APU 사무국의 이와모리 다사키(岩森崇) 과장은 “10년 후가 기대된다”고 말한다. “이 학생들이 공부를 끝내고 자기 나라에 돌아가 요직을 맡게 될 때쯤이면 학교도 부쩍 발전해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벳푸=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시오타 사무국장 “우수학생 유치 위해 직원들 전 세계 누벼”
‘학생의 절반을 유학생으로 채우겠다’는 APU의 구상이 나왔을 때 여론은 싸늘했다. 실패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PU는 올해 신입생 정원을 1.5배 늘리는 등 확장일로에 있다.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
시오타 구니나리(鹽田邦成·사진) APU 사무국장은 “우수학생 확보를 위해 발로 뛴 노력과 그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를 꼽았다.
APU의 모태는 교토(京都)에 위치한 리쓰메이칸(立命館)대. 1990년대 중반 APU 설립 방침을 정한 리쓰메이칸대는 사무국 직원 수십 명을 아시아 각국에 파견했다. 유능하지만 학비가 없어 사장되는 인재를 끌어 모으겠다는 구상이었다. 저출산 사회 일본의 인재 확보 전략도 염두에 있었다.
다른 한편 학교 측은 이들에게 줄 장학금을 모으기 위해 기업들을 찾아다녔다. ‘일본이 선진국으로서 국제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득해 모은 자금은 40억 엔. 마침 지방자치단체들의 대학유치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여서 벳푸 시로부터 12만여 평의 학교 부지를 무상 제공받았다.
이 같은 과감한 추진력의 배경에는 ‘교원과 직원이 협동해 일한다(敎職協同)’는 리쓰메이칸대의 독특한 전통이 있다. 교원들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더라도 행정이 받쳐주지 않으면 진척이 어렵기 때문이다.
APU의 성공사례는 일본 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4년 도쿄(東京)의 와세다(早稻田)대가 국제교양학부를 신설했고, 아키타(秋田) 시에는 영어로만 강의하는 국제교양대학이 신설됐다. 올해 들어 다쿠쇼쿠(拓殖)대 등 15개 대학이 일본국제교육대학연합을 설립해 공동으로 해외 학생 모집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벳푸=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