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의 홍보 전략이 달라졌다. 조심스럽고 침착하며, 현실감과 낙관론을 겸비한 새로운 리더십이 핵심 테마다. 7일 미군이 이라크 내 알 카에다 조직의 1인자를 사살한 이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이런 전략이 잘 드러난다.
부시 대통령은 13일 이라크를 전격 방문했다. 바그다드 공항에만 머물다가 워싱턴으로 복귀한 뒤에야 일정을 공개한 2003년 때와는 뚜렷이 대비된다. “미국은 약속을 하면 지킨다는 것을 보여 주러 왔다”는 그의 말은 TV를 통해 전파됐다.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제거 발표를 이라크 총리에게 양보한 뒤 열린 백악관 행사 때도 부시 대통령은 웃음을 삼갔다. 첫 보고를 들은 뒤 반응도 “That would be a good thing” 정도였다. “잘 됐구먼”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흥분하지 않은 반응(understatement)이었다”고 표현했다.
전략 변화는 낮은 지지율 탓이다. 재선 1년 만에 그의 지지율은 30%대 초반으로 가라앉았다. 더는 이벤트를 통한 ‘잔재주’가 먹히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집권 1기 초반부터 방송출신 프로듀서 3명을 영입해 홍보 전략을 펼쳐왔다. 영상의 힘을 이용한 것이다. 2003년 한 해 동안 미 언론이 전한 사례는 이렇다.
이라크전쟁 개전 3개월 만에 전투기를 탄 ‘최고사령관’이 항공모함에 내려 “임무 완수(mission accomplished)”를 선언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백악관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감세정책 발표 때 대통령 뒷자리에 앉은 기업인들에게 넥타이를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감세정책 수혜자도 보통사람’이란 이미지를 남기려 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보도다. 또 ‘큰 바위 얼굴’을 배경으로 한 연설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머리가 ‘네 번째 대통령의 자리’에 겹치도록 촬영했다. 댄 바틀릿 백악관 보좌관은 집권 1기 때만 해도 “대통령이 던지는 메시지 자체 외에 미국인의 눈에 무엇이 비치는지도 중요하다”고 말했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백악관은 미국인의 눈과 귀보다는 ‘마음’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의 ‘바싹 몸을 낮추는 전략’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부시의 머리’ 리크게이트 굴레 벗어▼
‘부시의 두뇌’로 불리는 칼 로브(사진) 미국 백악관 비서실 차장이 2년간 그를 괴롭혀 온 리크 게이트 사건으로 법정에 서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로브 차장의 변호사는 13일 “특별검사가 불기소 의견이 담긴 편지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리크 게이트는 백악관이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비판한 전직 이라크 주재 대리대사의 부인이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이란 사실을 언론에 유출(leak)했다는 사건.
2년간 수사를 통해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이 ‘언론에 흘리고도 검찰수사 때 거짓말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미 언론은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과반 의석 확보 유지라는 특명을 받은 로브 차장이 이번 불기소 결정으로 그동안의 부담을 덜고 선거에만 전념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날 민주당은 “특별검사의 판단을 존중한다. 하지만 수사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 국민은 백악관을 더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논평을 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