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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너무나 섹시한 포퓰리즘

입력 | 2006-06-15 22:17:00


“똑똑해서 죄송합니다.”

지난 한 달간 인도의 명문대 재학생들은 이런 푯말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정부가 명문대에 하층계급을 27% 더 뽑도록 강제해서다. 인도는 이미 대입 정원에 최하층계급 22.5%를 할당한 쿼터제를 뒀는데도 또 다른 계층의 표를 겨냥해 이를 확대했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실은 집권세력의 이익을 노려 남의 파이를 재분배하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전형이다.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레바논의 정치학자 가산 살라메는 “포퓰리즘은 섹시하다”고 했다. 요즘 세계의 정치세력에 포퓰리즘만큼 잘 팔리는 정치 상품이 없다는 얘기다.

특히 세계화로 치달으면서 여기서 뒤진 이들의 분노에 불 지르는 글로벌 포퓰리즘이 최신 유행으로 등장했다. 정권이 무능하고 정책에서 실패할수록 세계화 승자의 부(富)를 갈라 갖자는 경제 포퓰리즘이 잘 먹혀든다.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나라 바로세우기’를 강조하는 정치 포퓰리즘은 스테디셀러다.

우리도 예외일 리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방선거 참패 뒤에도 교육과 부동산 ‘개혁’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개혁은 개인과 나라의 경쟁력을 키우거나 삶의 질을 높이는 개혁이 아니다. ‘소비자가 지배하는 정치와 시장을 만드는 것이 개혁의 진정한 방향’이라고 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소비자는 지배 아닌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정치와 시장을 지배하려 든다면 이미 소비자가 아닌 독재자라고 해야 맞다. 아마도 대통령은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대신, ‘소비자라는 집권세력’이 지배하는 포퓰리즘 세상을 이상향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래서 교육개혁이랍시고 드러낸 것이 ‘학교 간 편차가 다소 있고 내신의 신뢰도가 떨어져도’ ‘대학입시에서 완전한 자율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정책이다. 그제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여론조사는 평준화에 80% 이상 찬성한다”며 고교평준화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학교 간 편차를 없애고 내신의 신뢰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어야 제대로 된 교육부총리다. 쿼터제만 없을 뿐이지 열악한 초중등교육은 그대로 둔 채 대입제도를 간섭하는 인도와 뭐가 다른가.

선한 의도를 가장한 포퓰리즘이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는 것은 여러 학자들이 입증해 낸 바다. ‘포퓰리즘의 거시경제학’을 쓴 루디거 돈부시는 “모든 포퓰리즘 실험은 집권 초기보다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끝났다”고 했다. 빈부 격차를 줄이기는커녕 집권세력의 부패만 늘렸고, 법과 질서를 무시한 채 정당정치 의회제도 민주주의를 해친다는 평가다.

교육 포퓰리즘의 결과는 더 심각하다. 질 높은 공교육을 통해 교육 수준과 생산성을 높이면 삶의 질과 경제 발전도 따라가게 돼 있다. 쿼터제나 ‘타율 대입’은 공교육 품질 개선 없이 대입제도를 주물러 허상만 키우겠다는 책임회피 오리발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개인도, 국가도 뒤처진다면 당신들이 먹여 살릴 건가.

인도에선 벌써 소프트웨어 대국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력에 비해 탁월한 수준의 대학을 두고 뛰어난 휴먼캐피털을 길러 낸 덕에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떠오른 인도다. 56년간 쿼터제를 실시하고도 불평등이 없어지지 않았다면 실패한 제도가 분명하다. 쿼터제가 더 확대되면 대학과 국가 경쟁력의 추락은 물론, 우수한 두뇌의 해외 탈출 가능성이 크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매번 다른 결과를 예상하면서 같은 일을 하고 또 하는 것이 바로 광기(狂氣)”라고 했다.

다행히 학습능력이 뛰어난 우리 국민은 3년 반 만에 포퓰리즘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냈다. 아무리 포퓰리즘이 섹시하대도 나와 내 자식이 먹고사는 문제에선 더는 속을 수 없다. 국민이 버린 포퓰리즘을 아직도 붙들고 있는 그들이 안됐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