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비유학생은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다. 외국의 선진 학문을 배우고 익혀 조국 발전에 이바지하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1958년 이승만 정부가 미국 국비유학생 100명을 뽑은 적도 있지만 4·19혁명이 일어나면서 중단됐다. 이후 1977년에 도입된 국비유학생제도가 올해로 30년째를 맞았다.
본보는 국비유학생 선발을 주관하는 국제교육진흥원의 내부 자료를 입수해 이들의 출신 학교와 전공, 유학 국가 등을 분석했다. 국비유학생은 초기에 서울대생과 이공계생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점차 출신 대학이나 전공이 다양해지는 추세다. 또 이들의 유학 국가도 미국 편중에서 벗어나고 있다.
▽“국비유학생=서울대생 공식 깨져”=197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비유학생 1761명의 출신 대학은 서울대가 1180명(67%)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이어 한국외국어대(100명), 연세대(85명), 고려대(68명)의 순이었다.
정부가 1996년부터 이공계열의 선발 비율을 줄이고 비인기 학문에 쿼터제를 도입하면서 서울대 출신 비중은 1981∼85년 78.5%에서 2001∼2005년 33.8%로 크게 줄었다.
국비유학생을 성별로 살펴보면 남자 1548명, 여자 213명이었지만 2001∼2005년 유학생 136명 가운데 여성은 50명(36.7%)이었다.
이들을 학부 전공별로 분류하면 기계공학 129명(7.3%), 전자공학 107명(6.1%), 화학공학 95명(5.4%), 금속공학 78명(4.4%) 등 상위 10위를 모두 이공계가 차지했다. 20위권에 든 인문계의 전공은 교육학(32명·1.8%·12위)과 경제학(22명·1.2%·17위)뿐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공계 비율이 줄고 있다. 기계공학 전공 유학생은 1977∼80년 21명(10.8%)에서 2001∼2005년 8명(5.9%), 전자공학의 경우 1977∼80년 21명(10.8%)에서 2001∼2005년 3명(2.2%)으로 줄었다.
대신 아랍어를 비롯해 인류학, 중국사학, 인도어학, 원예학, 해양학 등 다양한 학부 전공자가 2000년대에 새롭게 유학길에 올랐다.
국제교육진흥원 유학지원부 선종근 부장은 “초기에는 국가 전략 차원에서 산업화에 필요한 이공계 출신을 주로 선발했다”며 “최근 다양한 유학재단이 세워지고 이공계 장학금이 늘어나면서 지역 연구와 비인기 기초학문을 위주로 국비유학생을 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중국 등지로=미국은 유학 국가 중 단연 1위였다. 전체 유학생 가운데 78.1%(1375명)가 미국에서 공부했다. 영어권 국가인 영국이 109명(6.2%)으로 그 뒤를 이었으며 일본 52명(3.0%), 독일 39명(2.2%) 등의 순이었다.
이공계가 퇴조하고 비인기학과생이 늘면서 유학 국가도 변했다. 미국 유학생은 1981∼85년 384명(93.0%)에서 2001∼2005년 65명(47.8%)으로 크게 줄었다. 같은 기간에 일본 유학생은 2.7%에서 5.1%로, 중국 유학생은 1991∼95년 5명(1.6%)에서 2001∼2005년 9명(6.6%)으로 늘어났다.
2000년 중국 런민(人民)대에서 조세분야를 전공한 오종석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중국은 발전 가능성이 큰 신흥시장이다”고 말했다.
▽유학생 절반이 교수=국비유학생 가운데 절반가량이 대학 교수다. 국제교육진흥원에 따르면 유학을 마친 국비유학생 가운데 대학 교수(전임강사 이상)로 임용된 사람은 846명으로 전체의 48.0%를 차지한다. 해외에서 학위를 받고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인원만 121명이다. 1977년 1기로 선발된 12명 가운데 10명은 대학 교수나 연구원이다. 국내외 연구소에 205명(11.6%)이, 기업체에 172명(9.8%)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유학생 가운데 30% 가량이 귀국 예정 기간을 넘겨 유학 국가에 체류하면서 공부를 계속하거나 정착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권혜진 기자 hj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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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6개분야 33명선발…대학총장 추천 받아야▼
지난달 접수를 시작한 2006학년도 국비유학생은 26개 분야 33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지역학과 비인기 학문을 중심으로 해당 국가와 전공을 제한하고 있다. 지정 전공은 중국지역연구를 비롯해서 인도지역연구, 중동지역연구 등 지역연구 분야와 철학, 특수교육, 수의학 등 전공자가 많지 않은 학문이다.
지원자는 석사와 박사학위 과정을 나눠 지원할 수 있으며 국내 대학의 성적이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이어야 하며 출신 대학 총장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장학금 지급 기간은 2∼3년이며 지원 금액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미국의 경우 연간 2만7000달러 정도다.
▼진대제 前장관 - 박진 의원 등 ‘국비 출신’…유명인사들 누가 있나▼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박진 한나라당 의원,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명정수 전 유한대학장, 송지용 LG생명과학 기술연구원 상임고문 등이 국비유학생 가운데 널리 알려진 인사다.
진 전 장관은 1기 국비유학생으로 1977년 9월부터 1980년 8월까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장학금을 받지 못해 1976년 유학이 좌절된 진 전 장관은 국비유학생 제도를 이용해 결혼을 한 뒤 미국으로 향했다.
박 의원은 1983∼89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법을 공부했다.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도 박 의원과 같은 학교에서 경제학을 배웠다.
박 의원은 “장학금만으론 부족해 학교에서 조교 생활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면서 “매년 대사관에 공부한 내용을 보고하는 것이 번거로웠지만 공부한 것을 다시 정리하다 보니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송 고문은 중소기업에 다니던 1980년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클라크슨대 화학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송 고문은 “당시 국사나 영어 시험을 봤는데 국사 시험이 특히 까다로웠다”며 “직장에 다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니 쉽지가 않았다”고 회고했다.
송 고문은 유학을 마친 뒤 ㈜럭키 선임연구원으로 출발해 올해 초까지 LG생명과학 기술연구원장을 지냈다.
국비유학생은 이공계 전공자가 많아 활발한 대외 활동을 벌이는 사람은 적은 편이다. 초기 유학생들은 대부분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으로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원로 대접을 받고 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