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누가 해줘?/임사라 지음·양정아 그림/196쪽·8000원·비룡소(초등 고학년)
나래의 엄마는 방송에도 출연하는 유명한 미술평론가다. 조각가의 생명인 손을 다친 뒤부터 엄마와 사이가 나빠진 아빠는 나래가 뱃속에 있을 때 엄마와 이혼했다. 나래 오빠를 데리고 나간 아빠는 재혼한 뒤 시골에서 오리를 키우며 행복한 삶을 꾸리고 있다. 반면 엄마는 행여 나래가 상처 받을까 봐 필사적으로 주위에 이혼 사실을 숨기며 산다. 그래서 나래의 아빠는 공식적으로는 “미국 어느 연구소에서 연수 중”이다.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자 하는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이혼가정 이야기도 창작 동화의 흔한 소재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사회 현실을 다룬 창작 동화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 정작 동화(소설)를 읽는 재미가 묻히기 쉽다는 것.
그런 점에서 장편 창작 동화 ‘내 생각은 누가 해줘?’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보다도 읽는 재미에 있다. 열두 살 말괄량이 소녀 ‘나래’의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 책은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문체 덕분에 술술 읽힌다. 무엇보다 이런 주제를 다룬 책에서 흔히 느껴지는 무거움이나 칙칙함이 없다.
나래가 위층에 사는 같은 반 남학생 희주를 짝사랑하지만, 아내와 사별한 희주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싹트는 감정을 눈치 채고 갈등하는 내용은 사춘기 무렵의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법한 한 편의 파스텔빛 성장 동화로 읽힌다.
특히 아이들에게 ‘내시’라는 놀림을 받으면서도 발레리노를 꿈꾸며 발레학원을 다니는 소년 희주는 이 이야기가 표면적으로는 이혼 가정의 이야기지만, 사실은 사회적 편견에 맞서야 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도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