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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완성도 높아도 줄줄이 참패…한국영화 ‘악몽의 여름’?

입력 | 2006-06-17 02:57:00

비교적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한 올 상반기 개봉 한국 영화들. 위부터 ‘국경의 남쪽’ ‘호로비츠를 위하여’ ‘가족의 탄생’. 이들 영화는 예상 밖의 흥행 저조를 보여 충무로 영화 관계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올 상반기에 역대 최대 물량의 한국영화가 쏟아져 나왔지만 시장 점유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완성도 높은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영화계는 혼돈에 빠졌다. 한국영화는 올해 들어 15일까지 장편 상업영화만 33편이 개봉됐다.

매주 평균 1.3편으로 예년 0.5편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3월 16일(‘로망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방과 후 옥상’)과 4월 27일(‘사생결단’ ‘맨발의 기봉이’ ‘도마뱀’)과 5월 25일(‘짝패’ ‘호로비츠를 위하여’ ‘생, 날선생’)에는 같은 날에 3편씩 개봉되기도 했다. 월드컵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지만, 월드컵이 끝난 하반기에는 더 많은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어서 올해 한국영화는 100여 편이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상 최대 물량이다.》

○5월 관객 점유율 33.9%… 10개월 만에 최악

극장 관객도 늘었다. CJ CGV 집계 5월 관객은 서울 477만564명, 전국 1545만6610명으로 최근 10년 동안 가장 많은 수치이며 전년 같은 기간보다 53.1%가 증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양적 진화를 한 꺼풀 벗겨 보면 ‘속 빈 강정’에 가깝다. 우선 5월 한 달간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33.9%(CGV)로 지난해 7월 이후 최악이다. 본격적인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4월보다도 12.8%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올해 한국영화는 2월까지 ‘왕의 남자’가 이끌고 설 연휴를 겨냥한 ‘투사부일체’가 610만 명의 관객으로 역대 7위 흥행 성적을 기록한 것 말고는 300만 명을 넘어서는 영화가 없다. ‘음란서생’ 260만 명, ‘맨발의 기봉이’ 240만 명, ‘달콤, 살벌한 연인’ 230만 명, ‘사생결단’ 210만 명을 제외하고 빅 스타가 출연하거나 높은 완성도를 인정받은 ‘도마뱀’ ‘국경의 남쪽’ ‘가족의 탄생’ ‘호로비츠를 위하여’ 등은 예상 밖으로 저조했다.

○내부경쟁 심화-할리우드 대작 많아 침체

영화제작사 MK픽처스 심재명 사장은 “영화의 질이 하향 평준화되었다기보다 제작 편수가 너무 늘어나 ‘내부 경쟁’이 심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영화산업이 갑자기 팽창하다 보니 최근 국내에서 크랭크인한 영화만도 130∼160편에 이른다. 이렇게 가다간 한 주에 4편이 개봉하는 상황까지 올 것이다”고 말했다. 심 사장은 “한국영화 절대 편수가 많다 보니 관객의 선택 기준이나 입맛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이 과정에서 볼거리가 많고 재미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관객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영화계 안팎에서는 △그동안 호황에 기대어 너무 많은 한국영화가 제작, 개봉되면서 자체 경쟁률이 높아지고 △흥행 보증수표였던 코미디, 조폭영화에 관객들이 싫증을 내고 있으며 △‘미션 임파서블 3’와 ‘다빈치 코드’ 등 할리우드 대작이 5월에 일제히 개봉된 점 등을 침체 이유로 분석하고 있다.

‘미션…’과 ‘다빈치…’는 5월 한 달간 서울 관객의 53%, 전국 관객의 50%를 끌어 모으면서 미국영화의 점유율을 65.1%로 끌어올렸다. 이에 힘입어 외화 관객도 전국 951만 명을 기록해 작년 7월 이후 두 번째 높은 수치를 보였다. 최근 3년간 외화 관객이 900만 명을 넘긴 경우는 2005년 1월과 7월뿐이었다.

○7월 한국형 블록버스터 2편 개봉에 기대

영화평론가 김영진 씨는 “한국영화의 수준이나 관객의 취향이 급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블록버스터 ‘한반도’(강우석 감독)와 ‘괴물’(봉준호 감독)이 개봉되는 7월부터는 또다시 변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지금처럼 화제작 두세 편이 전체 스크린의 3분의 2를 점령하는 와이드 릴리스 개봉 패턴이 계속되는 한 50만 명에서 70만 명 정도가 볼 만한 중간급 한국영화들이 며칠 가지도 못하고 참패해 버리는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화계를 더 긴장시키는 것은 7월 1일부터 축소된 스크린쿼터제가 적용된다는 점. 이미 대다수 멀티플렉스는 올 한 해 한국영화 상영 의무일수(73일)를 거의 채운 상태라 하반기에는 한국영화의 보호막이 완전히 풀려 버린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영화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하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그러나 할리우드 직배사들의 견해는 다르다. 한 직배사 사장은 “한국영화에 대한 쿼터가 축소된다고 해서 영화 수입을 늘릴 생각은 없으며 결국은 시장 논리에 따라가는 것”이라며 “관객 반응이 안 좋으면 바로 다음 상영작으로 바꾸는 것은 외국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