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다리’. 사진 제공 아트포럼 뉴게이트
《‘흉터가 무늬가 되도록 나는 사랑하고 싸웠다.’ 한번도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오우암(66) 씨의 그림들을 보면서 문득 최영미 씨의 소설 ‘흉터와 무늬’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12세 때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로 굴곡진 삶을 살아온 작가의 생채기들은 이제 소박하고 건강한 예술로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험한 세상을 맨몸으로 버텨 온 그의 이야기를 풀어내자면 굽이굽이 끝이 없겠으나, 막상 이력은 단 세 줄로 요약된다.
초등학교 6학년 중퇴, 해병대 복무, 수녀원에서 30년간 근무 후 1994년 퇴직. 어려서부터 땅바닥에 작대기로 그림을 즐겨 그렸던 그는 수녀원에서 운전과 허드렛일을 하고 지내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이 별로 없던 겨울이면 수녀원 보일러실에서 합판에 에나멜로 잡지에서 본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러다 미대에 다니던 딸이 쓰다 남긴 자투리 캔버스와 물감으로 처음 유화를 그렸다.
수녀원 시절이나 지금까지 그가 다뤄 온 한결같은 소재는 6·25전쟁을 전후로 한 1940, 50년대 궁핍한 시대의 미시사. 작가는 유년시절에 본 일상 풍경들을 독특한 색감과 표현 방법으로 되살려 내는데 그 배경으로 철도가 자주 등장한다.
기차역 간이식당에서 가락국수를 먹는 사람들이나 초콜릿을 얻기 위해 아이들이 미군 열차를 쫓아가는 모습에선 왠지 애잔하면서도 쓸쓸한 서정이 느껴진다.
또 소달구지에 쌀가마니를 싣고 가는 ‘저 산 너머 남쪽엔’, 머리에 흰 수건을 둘러쓴 여인들이 물지게를 지고 가는 ‘공동수도 물집’, 검은 염소 세 마리를 몰고 걸어가는 노인의 뒷모습이 담긴 ‘나른한 봄날’, 가난하지만 훈훈한 가족의 한때를 보여주는 ‘누룽지 긁는 소리’ 등 한 세대 전의 근대사, 그러나 이젠 모두 사라져 버린 소박한 정경들이 담겨 있다. 눈코입이 생략된 경직된 자세의 인물들에, 반듯하게 구획된 건물들은 마치 가상공간 속의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그의 그림은 고통스럽고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의 자리를 기억 속의 풍경으로 세밀하게 되살려 내 울림이 크다. 세련된 테크닉은 없지만 작품에 담긴 이야기에서 강렬한 호소력이 전해진다. 미술평론가 오광수 씨는 “그의 작품은 제도적 방식에 일절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순수함과 건강함으로 그의 예술을 대변한다”고 찬사를 보냈다.
부산에 살고 있는 오 씨가 서울 화랑에서 첫 전시를 연다. 19일∼7월 1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아트포럼 뉴게이트(성곡미술관 앞)와 명륜4가 더뉴게이트이스트. 02-737-9011 www.forumnewgate.co.kr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