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선에서 물러나려는 세대에 대해 이처럼 관심이 집중된 경우가 있었을까. 일본의 단카이(團塊·덩어리) 세대 얘기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49년에 태어난 단카이 세대는 약 680만 명으로 일본 인구의 5%를 차지한다. 내년이면 이들이 60세 정년을 맞아 ‘무더기 은퇴’를 시작한다. 당장 그들의 퇴직금과 연금, 이들의 퇴장으로 생겨날 공백에 대한 우려가 겹쳐 정년연장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를 일본에서는 ‘2007년 문제’라고 부른다.
이들은 항상 몰려다니며 일본 사회를 들썩이게 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학생운동의 주역이었고 그 이후에는 산업전사로서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대도시 교외의 뉴타운 건설과 마이카 붐을 불러일으킨 것도 이들이다.
단카이의 모습이 곱게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20대엔 저항만 했고 30대엔 고도성장에 무임승차했으며 40, 50대엔 버블경제를 만들었고, 지금은 최고위 직을 차지한 채 정년까지 연장하려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어찌 됐건 단카이는 지금도 가장 활력이 넘치는 세대다. 사회 현안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일본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때로는 독선적이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 만나 본 단카이들은 입만 열면 “요즘 젊은 것들은…쯧쯧”하면서 ‘꿈을 잃어버린’ 젊은 세대를 걱정한다.
이들은 구매력이 가장 높은 집단이기도 하다. 지난해 한 조사에서는 퇴직 후 취미생활 예산이 1인당 연평균 156만 엔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들에 대한 퇴직금으로 정부 예산과 맞먹는 80조 엔이 지출될 것이란 말도 있다. 이렇다 보니 이들의 퇴장은 일본 사회 전체의 라이프스타일 재정립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단카이 세대와 함께 다시 한번 꽃을 피우자’는 기치 아래 옛 인기상품을 부활시키는 판매 전략이 활발하다. 유명 장난감 회사는 퇴직자 전용 오락시설을 열 계획을 내놓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은 앞 다퉈 중·노년층 전용 사이트를 개설한다. 대학들이 은퇴자를 겨냥한 코스를 신설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나라에도 베이비붐 세대가 있다. 단카이처럼 연령층이 눈에 확 띄게 집중된 것은 아니지만 6·25전쟁 직후인 1955∼63년생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은 단카이에 비해 10년 이상 젊지만 사회 퇴장을 ‘발등의 불’로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에 직장에 남아 있으면 도둑)’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로화가 두드러지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이들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대책도 없어 보인다. 더구나 이들은 단카이와 달리 연금도 재산도 부족하다. 주변에는 “우리는 일만 하다가 끝나는가”라며 탄식하는 이들 세대로 넘쳐 난다. 노후에 대비해 재테크를 얼마나 잘했느냐가 유일한 대책이라고나 할까.
이들에게 일본 단카이의 모습이 참고가 될 수는 없을까. 2월 도쿄(東京)에서는 2500명이 참가한 가운데 단카이당 모임이 열렸다. 정년퇴직자들이 적극적 사회 참여와 네트워킹 구축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자는 움직임이다. 여전히 단합을 통해 자신들의 역할을 찾겠다는 기세다.
우리의 베이비붐 세대는 위로는 유신 권위주의에 시달리고, 아래로는 목소리 큰 386세대에 밀려 제 목소리 한번 내 보지 못했다. 이들은 그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묵묵히 일만 해 왔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를 보며 우리의 베이비붐 세대가 그저 쓸쓸히 퇴장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