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이 브루킹스연구소의 ‘해밀턴 프로젝트’를 본보기로 여긴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현 정권이 본보기로 삼았던 외국 사례들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정책들을 펴 온 정권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외 사례들을 반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방선거에서 크게 진 상황이어서 미국에 대한 생리적 혐오를 드러낸 정권이 미국의 한 민간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를 반기는 일에 담긴 반어(反語)를 깨닫지 못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정권이 해외에서 비슷한 정책을 찾은 게 별 뜻이 없다는 점은 지적돼야 한다. 많은 사회에서 다양한 이념과 정책을 시험하는 터라 비슷한 것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게다가 해밀턴 프로젝트는 지금 야당인 미국 민주당을 위해 다음 선거를 겨냥하고 만들어졌다. 실행돼 검증된 정책이 아니다. 집권 기간이 거의 끝나 가는 정권이 위안을 받고 논거로 삼기에는 너무 허술하다.
좀 더 큰 문제는 그것의 내용이다. 보도된 내용을 살펴보면 대체로 그것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정책을 따랐다. 정부 주도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실패한 정책 방향이다. 지금 모든 사회에서 논쟁의 핵심이 된 교육에서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교사 노동조합의 영향을 워낙 크게 받기 때문에 민주당은 ‘교사 노조 지부’라고 불린다. 자연히 민주당의 교육 정책은 학생들의 이익이 아니라 교사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 주력한다. 반면 공화당은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펴서 학부모들의 선택을 늘렸다. 그래서 교육 분야에서 공화당의 정책적 우위는 확고하다.
중요한 것은 해외에서 비슷한 정책을 찾을 게 아니라 옳은 정책을 찾는 것이다. 옳은 정책을 찾으려면 내용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특히 정책의 맥락이 우리 사회에 맞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현 정권은 집권 초기에 고른 ‘네덜란드 모형’에서부터 그 점을 놓쳤다. 네덜란드 모형은 사회주의와 노조의 영향이 아주 컸던, 사회가 자유화되는 과정에서 나온 타협이다. 그래서 그것은 네덜란드에는 진보였지만 경제적 자유주의를 고른 우리 사회에는 중대한 퇴보였다. 그것이 이미 너무 컸던 우리 노조들의 힘을 더욱 크게 만든 뒤 끝난 것은 당연하다. 그 뒤에 선택한 ‘스웨덴 모형’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문제가 훨씬 심각한 것은 ‘과거사 청산’에서 ‘프랑스 모형’을 고른 것이다. 프랑스는 독일에 의해 몇 년 동안, 군사적 점령만 당했다. 하지만 우리는 수십 년간 일본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것도, 안타깝지만, 당시 국제적으로 인정받거나, 적어도 묵인된 지배였다. 과거사 청산의 타당성은 그만두더라도, 우리와 그렇게 다른 경험을 한 나라의 정책에서 무슨 교훈을 얻어 낼 수 있겠는가?
따라서 현 정권에 대한 조언은 해외 모형을 고를 때 그저 비슷하다고 반길 게 아니라 맥락을 살피라는 얘기여야 하리라. 그러나 현 정권이 그런 조언에 귀를 기울일까? 이제 와서 생각을 바꾸고 정책의 틀을 바꿀 수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요즘 자신의 역사적 역할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자신이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맡았다고 여기는 노 대통령의 생각에 적잖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비록 노 대통령이 생각하는 역할과는 다르겠지만….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통치하면 안 된다’는 것을 더할 나위 없이 잘 보여 주었다. 그것이 그에게 맡겨진 역사적 역할이다. 이 글에 나온 사실들에서 교훈을 얻는 일은 정치 지도자를 새로 뽑을 시민과 그들이 뽑을 지도자의 몫이리라.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