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KBS에서 일한 강동순 감사가 다음 달 퇴임을 앞두고 ‘KBS와 권력’이라는 책을 냈다. KBS가 ‘역대 정권의 시녀’로 어떤 행태를 보여 왔는지를 낱낱이 드러내는 내부 고발이다. 독재정권 시절 KBS의 역할은 ‘땡전뉴스’ 등으로 많이 알려진 대로지만 ‘참여정부 3년간의 KBS’는 지금이 민주시대가 맞는지, KBS가 국민을 위한 전파(電波)가 맞는지를 거듭 묻게 한다. 극심한 정권 편향성(偏向性)은 새삼 충격적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 때 KBS 보도는 편향의 극치였다고 강 감사는 증언했다. KBS 보도프로그램은 9 대 1의 비율로 탄핵 반대 목소리를 내보냈다는 분석이다. 강 감사는 당시 기자들이 ‘시위 현장이 눈물바다로 변합니다’ ‘수구 부패정치를 척결하기 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촛불집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등 ‘보도의 이름으로 선동했던’ 생생한 기록을 책에 담았다.
현 정권이 임명한 정연주 사장은 재임 3년 동안 ‘대(對)국민 사과’를 9번이나 했다. 정 사장은 이른바 시대정신을 내세우는 일부 직원과 함께 ‘정권 섬기기’에 매진하다가 공영방송의 신뢰도를 땅에 떨어뜨렸다는 게 강 감사의 결론이다.
정 사장이 이른바 ‘개혁 프로그램’이라며 신설한 ‘생방송 시사투나잇’ ‘미디어 포커스’ 등은 아직도 편파성 시비를 낳고 있다.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 누드패러디 파문을 일으킨 ‘시사투나잇’은 내부 심의에서조차 160여 회에 걸쳐 편파성 지적을 받았다. 또 KBS 라디오가 이념 편향적 인사들을 출연시켜 한쪽 견해만 부각시킨 일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강 감사는 “이 책에 실린 KBS의 역사와 기록은 국민을 향한 가슴 저미는 고해성사”라고 말했다. 이 책은 강 감사의 체험에다 동료들의 증언, 구체적 자료를 토대로 쓰여 설득력을 더한다. 한국 방송사에 치욕으로 남을 ‘KBS의 지난 3년’을 진두지휘했던 정 사장은 이달 말로 임기가 끝나지만 연임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현 정권과의 공생공사(共生共死) 구조가 견고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결국 KBS 개혁은 국민의 힘으로 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