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토고의 월드컵 예선 경기가 치러진 이튿날. 인터넷에는 이날 경기 상황을 비튼 두 컷 짜리 만화가 떠돌며 누리꾼을 즐겁게 했다.
“이기고 있으니 막판에는 볼 돌려 실점 막읍시다.”(저공)
“꺄―악! 장난하냐! 페어플레이해라.”(원숭이들)
“그럼 골 먹고 집에 가든가.”(저공)
“카드도, 축구도 돌려막기죠….”(원숭이들)
축구팬 사이에서도 ‘옳은 선택이었다, 아니다’ 논란이 됐던 한국 선수들의 ‘공 돌리기’를 한 누리꾼이 풍자한 이 만화는 최근 유행하는 ‘조삼모사’ 시리즈 중 하나다.
“올해 언어영역 난이도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입니다.”(저공) “꺄―악! 지난해 너무 쉬웠잖아.”(원숭이들) “싫으면 내년에 보든가.”(저공) “난이도 유지에 늘 감사.”(원숭이들)…(조삼모사 ‘수능’편)
“이번 수련회는 경주 불국사로.”(저공) “꺄―악! 경주만 다섯 번째잖아!”(원숭이들) “초대 가수 채연인데….”(저공) “조상의 문화를 느끼고 싶습니다.”(원숭이들)… (‘수련회’편)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저공(狙公)이 키우던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로 제한하겠다”고 하자 화를 내던 원숭이들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라고 바꾸자 좋아했다는 고사성어. 즉,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농락함을 일컫는다. 올해 초 만화가 고병규 씨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를 패러디한 원화를 올린 이후 누리꾼은 그림만 있고 대사가 없는 빈칸 만화를 내려받아 정치, 사회 현안부터 군대, 연예가 소식, 심지어 학교에서 일어난 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저공과 원숭이 사이의 대화를 창작하고 있다. 현재 누리꾼이 만든 조삼모사 시리즈는 100개가 넘는다.
조삼모사는 초스피드 유머다. 한 칸만으로는 서사 구조를 만들 수 없지만 두 컷을 통해 ‘전제를 주고 바로 이를 뒤집는’ 2단 구성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것. 조삼모사는 포맷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누리꾼은 동일한 포맷에 계속 내용을 바꾸어 짧은 시간에 다량의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조삼모사 ‘직장’편을 만들어 봤다는 새내기 회사원 김정훈(29) 씨는 “무엇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비굴함을 많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조삼모사 개그의 핵심 코드는 원숭이들의 ‘비굴함’이다. ‘저공의 명령→원숭이들의 집단 반발→저공의 횡포→원숭이의 비굴한 태도 변화’로 구조화되는 이 만화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실리를 위해 비굴해지는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원래의 조삼모사는 간사한 꾀를 쓴 사람을 비판한 것이었지만 만화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강압적인 결정을 내리는 저공, 즉 권력자를 비판하는 것으로 바뀐다”며 “비굴한 원숭이들의 모습을 통해 역설적으로 강자를 비판하는 ‘패러독스의 유머’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