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책갈피 속의 오늘]1966년 그레이엄 목사 英홍등가 설교

입력 | 2006-06-17 03:02:00


1966년 6월 17일 영국 런던의 술집과 스트립쇼 클럽이 모여 있는 홍등가 소호 거리.

뭇 남성을 유혹하는 거리의 여인들로 가득한 이곳에 한 중년 남성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지역의 포주 등 일부 주민은 그를 막아섰다. 그러자 이 남성은 자동차 위로 올라가 “간음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고 외쳤다. 한 스트립걸이 그를 밀어 냈다.

그를 지지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간에 패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경찰이 출동해 이들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그 남성은 뒤돌아서며 이렇게 읊조렸다.

“낯선 여자의 입술은 꿀송이처럼 꿀을 뚝뚝 떨어뜨리고/ 그의 입천장은 기름보다 더 매끄럽다/ 그러나 그에게서 오는 나중 결과는 쓴 쑥만큼이나 쓰고 쌍날칼만큼이나 날카롭다….(성경 잠언 중 일부)”

세계적인 부흥목사인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1918∼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인 그는 플로리다 신학교와 탬파 위튼 칼리지를 졸업하고 1939년부터 목사의 길을 걸었다. 그는 전 세계를 돌며 설교를 했고 그때마다 수많은 신도를 몰고 다녔다.

1973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광장(현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그의 전도대회 때는 100만 명 이상의 군중이 모여들기도 했다.

특히 그레이엄 목사와 김일성 북한 주석(1994년 사망)의 ‘깊은 인연’은 세간의 화제였다.

그는 1997년 발간한 자서전 ‘나 있는 그대로’에서 김 주석을 두 차례 만났고 자신의 며느리가 북한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한반도 핵 위기가 고조되던 1994년, 북한 핵시설을 선제공격할 계획을 세우던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이를 포기하라고 설득하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중개한 이도 그였다.

김 주석은 그레이엄 목사에게 북한에서의 예배활동을 허락할 뜻을 밝혔으나 갑작스러운 김 주석의 사망으로 선교활동은 무산됐다.

90세를 앞둔 그는 요즘 뇌수종과 전립샘암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6월 미국 뉴욕에서 마지막 부흥집회를 열고 은퇴했다. 아들 프랭클린에게 반세기 전에 설립한 ‘빌리 그레이엄 복음협회’ 책임자 자리를 넘겨줬다.

그러나 육체의 고통은 오히려 그를 더욱 강건하게 만들었다. 그레이엄 목사는 최근까지도 “하나님을 직접 뵙기를 기대한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신앙의 힘이 위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