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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대학]英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입력 | 2006-06-19 03:03:00

그리스 양식의 UCL 캠퍼스 본관 건물 앞에서 학생들이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 반발해 세워진 비종교 대학으로 여학생과 외국인이 다른 대학보다 많다. 런던=김진경 기자

UCL 학생들이 학생회관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담소하고 있다. 런던=김진경 기자


2002년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UCL)와 임페리얼 칼리지의 통합 논의가 있었을 때 UCL 학생과 교수는 물론 동문들까지 나서 반대했다. 180년간 지켜온 인본주의와 자유주의 전통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 대학은 재력가와 국교도를 위한 대학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 반발해 설립됐다. 더구나 런던 도심 블룸스버리에 있어 인근에 있는 각종 연구기관과 병원을 통합하기에 좋았다. 20세기 말 크고 작은 기관을 야금야금 합쳐 1999년까지 16개 기관을 합병시켰다.

따라서 ‘영국의 MIT’로 불리는 임페리얼 칼리지와의 통합은 규모면에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뛰어넘는 세계적 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UCL인들은 UCL의 정체성을 선택했다. 통합 논의는 실패로 끝났다. 이 일로 UCL인들은 더욱 똘똘 뭉치게 됐다.

UCL의 인본주의 전통은 캠퍼스를 둘러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그리스 양식의 건물과 그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그리스 조각이 그것이다. 이 학교에는 중세의 유물인 채플이 없다.

도미니크 푸르니올 대외협력실장은 캠퍼스를 안내하다 남쪽 회랑에 전시된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의 묘지 앞에서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의과대학 해부용으로 기증했다”고 설명했다.

자유주의 전통은 일찌감치 유학생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 수 있다. 1세기 전 인도의 간디와 타고르,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이곳으로 유학을 왔다.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동문이다. 현재 유학생 수는 전체 학생의 22.3%.

필립 트렐리븐 부총장은 “런던에는 미국 뉴욕보다 더 다양한 인종과 국가의 사람이 살고 있다”며 “국제화된 런던의 중심대학으로서 학문의 다양성과 국제화를 위해 유학생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학은 의학 물리 화학 문학 경제 등 분야에서 1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정도로 기초 학문에 강하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이 대학의 경쟁력은 이종(異種) 학문 간 벽을 허물고 교육하고 연구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기초학문을 토대로 학제 간 연구를 활성화해 최근에는 실용화된 연구를 내놓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전공뿐 아니라 다른 학문을 함께 공부하라고 독려한다. 학과가 70개나 있어 관심분야의 학문을 찾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

아예 철학과 프랑스어, 역사와 과학, 경제와 지리, 독일어와 재정, 재무관리와 기계공학같이 이종 학문을 통합해 전공으로 만든 경우도 많다. 현대 사회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한 가지 학문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교육이 대학 내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UCL은 학생들에게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정경대,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전산과 학생인 영국인 시아바시 마다비(25) 씨는 UCL에 없는 경영학 관련 3개 과목을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 수강했다. 마다비 씨는 “비록 이공계 박사과정을 밟고 있지만 논문내용을 창업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경영학이 꼭 필요한 과목이었다”고 말했다.

연구 성과를 대학경쟁력으로 꼽는 최근 추세에 맞춰 UCL은 연구중심대학으로 변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해 수입(5억1600만 파운드) 중 순수 정부지원금(1억5300만 파운드)보다 각종 정부기관이나 기업에서 받는 연구기금(1억6700만 파운드)이 더 많다. 각종 연구 프로젝트에서도 이종 학문 간 협업이 활발하다.

2004년 시작된 ‘어드벤처 펀드 기금’ 프로젝트에는 이 대학 전산과 연구원들뿐 아니라 웨스트잉글랜드대의 생의학과 면역학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인간의 면역시스템 작동 과정과 유사한 메커니즘을 컴퓨터 보안 솔루션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 연구한다. 협력업체인 HP 직원들도 참여해 미래 산업화 가능성을 조언한다.

김정원 연구원은 “서로 다른 연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교환함으로써 더 창의적인 연구결과를 산출해낼 수 있다”며 “최근에는 공학과 예술, 공학과 환경 등 분야 간 통합연구도 활발하다”고 소개했다.

트렐리븐 부총장은 “전체 학생 중 대학원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3분의 1로 다른 대학보다 높은 편이나 2분의 1까지 늘릴 계획”이라며 “기초과학뿐 아니라 지금은 기업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연구도 우리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변화 홍역 앓는 英대학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는 중세대학 옥스퍼드(1167년)와 케임브리지(1209년)에 이어 500년쯤 뒤에 세워진 영국의 세 번째 대학이다. 1826년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자연합이 설립했다.

UCL이 개교하기 전까지 런던은 유럽 유일의 대학이 없는 수도였다. 국교인 성공회교도가 아닌 비국교도가 세운 비종교 대학인 UCL은 계급 종교 인종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입학을 허가했다. 영국 성공회는 이에 대항해 1831년 킹스칼리지를 설립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걸쳐 급격히 성장하는 도시들과 함께 브리스틀, 맨체스터, 리버풀, 버밍엄, 리즈, 셰필드 대학이 들어선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옥스브리지(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합쳐 부르는 말)와 달리 붉은 벽돌로 지어져 ‘벽돌대학’으로 불렸다.

이후 1963년 로빈보고서가 대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배스, 에섹스, 워릭, 요크와 같은 대학이 설립되는데 이들 대학은 현대적 건축자재인 유리를 많이 사용했다고 해서 ‘유리대학’으로 분류된다.

영국의 대학은 대부분 공공기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국립학교에 가깝다.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학부생의 수업료는 그동안 정부가 부담해 왔다. 그러나 고등교육개혁을 목표로 한 디어링보고서에 따라 1998년부터 수익자 부담원칙을 채택해 모든 대학이 1년에 약 1000파운드의 학비를 받고 있다.

엘리트 위주의 대학정책을 견지해 온 전통 때문에 1960년대까지 영국에서 대학교육 수혜자는 6%에 불과했다.

영국 정부는 이후 꾸준히 대학을 설립하고 1990년대 기술대학을 일반대학으로 승격시키는 등의 조치를 통해 최근 대학 진학률을 43%까지 끌어올렸다. 2010년까지 50%로 올릴 계획. 그러나 학생수 증가와 정부지원금 축소 등 여러 이유로 대부분의 대학이 재정난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영국 대학들은 올해부터 대학과 전공에 따라 연간 3000파운드 범위 내에서 수업료를 차등 부과하고 대신 졸업 후 연봉이 1만5000파운드 이상이 되면 갚도록 하고 있다.

런던=김진경 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