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돈은 정상의 눈을 손으로 파헤친 뒤 성경책과 사진 석 장을 묻었다. 동지들의 얼어붙은 주검 앞에서 한 약속을 마침내 지킨 것이다. 그 자리에서 눈물 많은 사나이 고상돈은 한없이 울었다. 지구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고상돈은 한 시간가량을 보냈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본문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웅 만들기에 인색한 경향이 있다. 실제로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평판을 획득했건만 정작 국내에서는 그 가치를 애써 폄훼하려는 것이다. 등산 분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8000m 이상의 14개 산을 모두 오른 산악인을 세 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등정주의냐 등로주의냐의 논쟁을 떠나서 그 자체만으로도 상찬 받아 마땅한 업적인 것이다. 우리가 열악한 제반 환경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산악대국으로 성장한 배경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은 잊혀진 1977년의 에베레스트 등정이었다.
사실 1977년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와 관련된 책들은 이전에도 여러 권 출판된 바 있다. ‘세계의 지붕에 첫발을 딛다’도 그 ‘오래된 이야기’를 쉽게 풀어 쓴 것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읽을 때마다 늘 새로운 감동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들도 있다.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어, 끝내는 ‘고전’의 지위에 올라서는 이야기들이다. 1977년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1977년 9월 15일 낮 12시 50분.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고상돈 대원은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습니다”라는 감격적인 말을 베이스 캠프에 무전기로 전달하며 ‘세계의 지붕’ 위에 우뚝 섰다. 개인으로서는 세계 역사상 56번째의 일이고, 국가로서는 세계 역사상 8번째의 대기록이다. 해발 2000m가 넘는 산이 없는 남한의 지형, 이른바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던 저열한 경제사정, 이제 와 돌이켜보면 헛웃음이 나올 만큼 형편없었던 장비, 기술, 정보 등을 염두에 둔다면 참으로 놀라운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당시 준비해 간 프랑스제 산소통이 부족해 뒤늦게 미국제 산소통을 구했지만 산소통과 호스의 연결 부위가 맞지 않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등반이 이뤄졌다.
‘세계의 지붕…’은 네팔 정부에 ‘에베레스트 입산허가서’를 제출했던 1971년부터의 6년 세월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그 힘겨웠던 세월을 버텨내고 끝내는 보란 듯이 이겨낸 산악인들의 순수했던 열정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당시 사진기자로서 원정에 참여했던 김운영 씨의 사진이 그동안 발전된 사진기술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현장을 증언하고 있는 것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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