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가장 적게 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라.’ 미국 정치가 버나드 바루크(1870∼1965)의 이 말은 약속을 가장 잘 어기는 직업인이 정치인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정치인의 다짐은 ‘약속’이 아니라 ‘게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약이나 정책은 물론, 은퇴 선언까지도 그런 경우가 많다. 정치적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은퇴의 뜻을 밝혀 소나기를 피했다가 어느 날 이런저런 명분을 대며 다시 나타난 정치인이 어디 한둘인가.
▷강삼재 전 의원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2003년 9월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예산을 선거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안풍(安風)사건’ 1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랬던 그가 7·26재선거(경남 마산갑)에 출마하겠다며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만큼 상황이 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판결은 돈의 출처를 안기부 예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일 뿐, 불법 정치자금의 가능성까지 배제한 것은 아니다. ‘검은돈’과 연관이 없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
▷딱하기는 김덕룡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5·31지방선거 전 부인이 4억 원의 공천헌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당적, 의원 직 사퇴를 포함해 조만간 정치적 거취를 밝히겠다”며 사실상 정계은퇴를 시사했다. 의원회관 사무실도 폐쇄했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가 크고, 한나라당 대선 승리를 위해 역할이 남아 있다”며 슬그머니 정치 재개 의사를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의 처신은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기 위해 의원 직을 사퇴했다가 백의종군을 선택한 맹형규 전 의원과 대비된다. 3선의 탄탄한 지역기반과 정책능력 등을 들어 당내에서 서울 송파갑 재출마를 권유했으나 “약속을 지키고 싶다”며 사양했다. 한 번 한 말은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는 것이 정치인의 기본 덕목(德目)이다. 한나라당이 강 씨와 김 씨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지방선거에서 이 당에 몰표를 준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