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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서정보]억지설정…극단상황…어이없는 TV드라마

입력 | 2006-06-20 03:01:00


처음부터 비정상적 설정이었기에 비정상적 극한 상황은 피할 수 없는 결말이었을까.

SBS의 주말 드라마 ‘하늘이시여’를 보면 극단적인 상황이 잇따라 전개된다. 이 드라마는 시작 전부터 생모가 20여 년 전에 어쩔 수 없이 버린 딸을 며느리로 맞는다는 설정이 논란이 됐다. 이 때문에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따지고 보면 오누이인 남녀가 부부가 되고 동생이 시누이가 되는 등 비현실적인 상황이 전개됐다.

종영이 가까워지면서 설정은 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악의 화신’처럼 나오는 주인공의 양어머니는 임신 중인 수양딸에게 출생의 비밀을 폭로해 조산과 실어증을 겪게 한다. 여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조연급 연기자들은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돌연사하거나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해 느닷없이 드라마에서 사라졌다.

시청자들의 양식을 시험하는 듯한 설정은 이뿐만이 아니다. 3일 방송분에서는 방송사 기자로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취재 활동을 보여 준다며 정부 관리가 직접 출연해 행정중심복합도시 계획을 홍보하는 내용을 내보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보고 나면 뒷맛이 개운치 않고 정신질환자가 된 듯한 느낌” “주말에 편히 보는 가족 드라마가 아니라 매회 사람이 죽어 나가는 호러 엽기 드라마가 됐다”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비상식적인 인물과 사건이 속출하는 이 드라마는 지난해 9월 50회 예정으로 시작됐지만 시청률이 높게 나오자 75회, 다시 85회로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18일 시청률은 32.1%로 월드컵 기간 중에도 변함없는 인기를 누렸다. 방송사는 성공이라고 자평할지 모르지만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과 성공의 의미는 무엇인지 보여 주려고 한다”는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찾아볼 길이 없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항변도 어느 정도의 개연성과 사회적 함의가 있을 때 동의를 얻을 수 있다. 출생의 비밀이나 억지스러운 관계 설정, 극단적 상황으로 시청자들에게 피학적 재미를 느끼게 하는 이 드라마가 과연 한국 드라마의 한류(韓流) 경쟁력을 높이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제발 수출만은 하지 말아 달라는 한 시청자의 지적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정보 문화부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