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응원단은 13일 토고전 때와 마찬가지로 라이프치히 첸트랄슈타디온에 속속 모여들었다. 경기 전부터 붉은 물결을 일으키며 우승 후보인 프랑스를 압도했다. 이역만리 독일에서 열리는 월드컵인데도 마치 한국에서 열리는 경기처럼 우리 팬들이 관중석을 붉게 물들일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이 느껴졌다.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붉은악마들 역시 선수들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힘이 초반부터 상대를 압도하는 느낌이다. 그들이 위로 치켜 든 커다란 플래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넘어섰다.’
프랑스전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봤던 것은 우리의 지역방어가 프랑스에 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아트 사커’로 대변되는 프랑스는 기술과 경험 등 모든 면에서 태극전사들을 압도하는 게 사실. 우리가 이들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은 조직력과 정신력뿐이다.
걱정했던 대로 프랑스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월드컵 본선 4경기 연속 무득점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에 마침표를 찍었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티에리 앙리의 발이 모처럼 월드컵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국은 전반 내내 끌려 다녔다.
한국의 전반 수비에 문제가 있었다. 앙리와 지네딘 지단에게 마크가 집중되면서 두 선수의 움직임으로 생겨난 공간을 프랑스의 양 사이드 공격수가 중앙으로 좁히며 볼을 잡는 상황이 자주 나타났다. 여기에 우리 수비수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공을 가졌을 때 상대에 수비 형태를 갖출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줬고 그 결과 강한 압박을 당하며 공격다운 공격을 하지 못했다.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은 충분한 훈련을 통해 압박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숙지한다. 이때 상대의 전선에서 압박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진영으로 내려와서 볼이 위험지역으로 들어왔을 때 협공수비를 통해 빼앗을 것인가도 중요하다. 하지만 압박을 통해 볼을 다시 가졌을 때 그 다음 상황에서 어떻게 볼을 보낼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후반 설기현을 투입하면서 양 사이드 공격이 살아났다. 사이드에서 이어지는 크로스를 골문으로 집어넣은 박지성의 득점은 축구의 교과서를 보는 듯했다. 그 교과서 같은 축구에 관중석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비록 예전보다 노쇠해져 기민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번 월드컵 우승후보 중 하나로 꼽힌 프랑스를 상대로 태극전사가 무승부까지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경기가 끝난 뒤 상대 벤치로 가서 여유 있게 악수를 청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선수가 된 박지성과 이영표가 있었고, 위기 상황에서 침착한 플레이로 실점을 막은 이운재의 선방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 독일 언론에서도 인정한 세계 제일의 응원단인 붉은악마의 함성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황보관 오이타 트리니타 선수육성 총괄부장 canonshooter199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