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번에는 가능할 것이다.”
독일 현지에서 만난 한 스페인 방송인의 말이다. 다름 아닌 스페인축구대표팀이 이번 월드컵에서는 우승컵을 들어올릴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혼자 힘으로 승부를 좌우할 수 있는 ‘마법사’들이 득실대는 브라질, 웨인 루니를 앞세우며 어느 때보다 견고한 전력을 구축한 잉글랜드, 전통의 빗장 수비에 신진 스트라이커들의 화력이 매서운 이탈리아, 그리고 개최국 우승 재연의 야심을 품고 있는 독일 등이 주목받는 가운데 스페인은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아 왔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스페인은 지역예선 성적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 밀리면서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적어도 유럽 무대에서의 스페인은 예전 ‘무적함대’의 면모와는 거리가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월드컵 역사에서 스페인이 전통적으로 약세를 보였다는 것. 스페인은 ‘월드컵에서의 성과가 가장 기대에 못 미치는 축구 강국’의 대명사로 꼽힌다. 세계적인 프로리그와 명문 클럽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1950년 4강 진출이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올린 최고 성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독일에서의 스페인은 다르다. 우선 절정의 실력을 구가하는 선수들의 신구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 능력 있는 젊은 선수들의 성장 속에서 이제는 ‘마드리드의 아들’ 라울에게도 무조건적인 주전 자리가 보장되진 않는다.
사비와 사비 알론소가 버티는 중원에서의 패싱 조율은 세계 최정상의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마르코스 세나는 ‘두 명의 사비’와는 또 다른 색깔을 스페인의 미드필드에 불어넣고 있다. 최전방 공격 라인을 형성하는 페르난도 토레스와 다비드 비야는 다재다능함과 민첩한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진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유럽의 클럽 축구 시장에서 토레스와 비야는 이미 거물급 스트라이커로 인정받고 있다. 루이스 가르시아는 최근 스페인 축구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스타일을 팀에 첨가하는데, 그것은 바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골을 터뜨리는’ 일종의 마술이다. 측면 플레이가 필요하다면 호아킨과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가 출격한다. 그리고 후방에는 카를로스 푸욜과 이케르 카시야스가 버틴다.
이제껏 스페인대표팀을 갉아먹어 왔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소속 선수들 간의 갈등’도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현재 스페인대표팀의 선수 구성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두 클럽 위주와는 거리가 있다. 한마디로 다양한 국가 출신, 다양한 클럽 소속, 다양한 경험의 신구 세대가 섞여 있다.
사비 알론소와 가르시아(이상 리버풀), 파브레가스와 레예스(이상 아스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빠른 스피드와 거친 몸싸움을 경험하며 더욱 성장했다.
이런 스페인이 이번에도 월드컵에서 ‘예의’ 그 실패를 반복한다면 책임과 비난의 화살은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아라고네스 감독은 이미 일부 엔트리 선정에서도 논란의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