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헌 씨는 특이한 산악인이다. 남들이 8000m 이상의 히말라야 14개 봉우리를 목표로 저마다 열을 올릴 때 그는 등반하기 힘든 히말라야 거벽을 찾아다녔다. 그가 2005년 1월 후배 최강식 씨와 함께 촐라체(6440m)에 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끈’은 당시 촐라체 북벽 정상에 오르고 하산하다가 조난당한 박 씨와 최 씨가 등반부터 생환까지 9일 동안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두 사람은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지 사흘 만에 촐라체를 오른 뒤 서둘러 하산했다. 그러나 5300m 지점에서 최 씨가 베르크슈룬트(빙하에 균열이 생겨 갈라진 틈새)로 떨어졌다. 박 씨는 둘을 묶고 있던 자일을 당기다가 갈비뼈 두 대가 부러졌고 최 씨는 떨어지면서 빙하에 부딪혀 두 발목이 부러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박 씨는 자일을 끊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엔 자일보다 더 단단한 우정의 끈이 이어져 있었다.
“우린 살 수 있다, 함께 살아서 돌아가자.”
박 씨는 자일을 당기고 최 씨는 온 힘을 짜내 25m를 기어올라 기적적으로 베르크슈룬트를 탈출했다. 하지만 더 힘든 여정이 남아 있었다. 구조를 요청하려면 1000m 이상 내려가야 했다.
박 씨는 후배를 업고 최 씨는 방향을 알려 주며 하산이 시작됐다.
그들은 조난당한 지 사흘 만에 빙벽 지대를 벗어났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었다. 눈까지 내려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둘 다 죽는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먼저 박 씨만 하산하기로 했다. 빨리 민가를 찾아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 둘 다 사는 길이라고 여긴 것이다. 박 씨는 세 시간 만에 야크 움막을 찾았지만 그곳은 비어 있었다. 그는 움막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혼자 남겨진 최 씨는 점점 눈이 쌓이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박 씨가 구조를 요청한다고 해도 눈이 쌓이면 구조조차 어려워질 것이다. 최 씨는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기었다. 5시간 동안 헤맨 끝에 박 씨가 쓰러진 야크 움막에 도착했다. 이들은 다음 날 야크 움막을 찾은 현지인에 의해 구조됐다. 그러나 박 씨는 동상으로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를, 최 씨는 손가락 9개와 발가락 전부를 잘라내야 했다.
末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