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위안부 직접 진술없어도 보상 받는다…진상규명위 첫 인정

입력 | 2006-06-23 03:01:00

일본 제7방면군 남방제9육군병원의 한국인 징용·징병 기록인 복원명부에 위안부 피해자 이영순(가명) 할머니가 임시간호부로 기록돼 있다. 사진제공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병상에 누워있는 이영순(83) 할머니는 아무 말도 없었다.

17세의 나이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남부 팔렘방 지역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간 뒤 60여 년. 가슴에 묻어둔 아픔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길이 열렸지만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이 할머니는 22일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동생마저 알아보지 못했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이날 이 할머니 등 일본군위안부 2명에 대해 ‘피해 사실 인정’ 결정을 내렸다.

이 할머니는 피해사실을 직접 진술하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처음으로 피해 사실이 인정된 사례. 이 할머니는 의료·주거지원은 물론 생활안정지원금으로 일시금 4300만 원과 월 70만 원을 받게 된다.

위안부 피해자는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와 달리 피해사실을 입증할 만한 문서가 발견되지 않아 피해자의 직접 진술이 없으면 피해사실 인정을 받기 어려웠다.

실제로 현재까지 진상규명위에 신고된 위안부 피해자 330명 가운데 진상규명위가 피해사실 인정 결정을 내린 위안부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사실을 직접 진술한 10명이 전부다.

그러나 노환이나 지병 때문에 자신의 피해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위안부 피해자도 이번 결정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할머니는 1943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남부 팔렘방 지역으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일본군에게 치욕을 당하는 지옥 같은 날은 광복 때까지 계속됐다.

평생 묻힐 뻔했던 이 할머니의 피해사실은 남편이 숨진 뒤 진상규명위에 피해신고를 접수시킨 동생에 의해 드러났다. 하지만 몇 년 전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자신의 피해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해 피해사실을 인정받기 어려웠다.

진상규명위는 동생의 진술을 바탕으로 올해 초 한국인 징용·징병 기록인 제7방면군 남방 제9육군병원 복원명부에 이 할머니가 임시 간호부로 기록된 것을 확인했다.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위안부 피해자의 ‘피해 사실 인정’ 결정은 피해자 증언에 의존했다”며 “이번 결정은 직접 증언 없이 내려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