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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축전 참가 범민련 간부 北정권에 충성맹세 전달 시도

입력 | 2006-06-24 03:09:00


6·15 남북정상회담 6돌을 맞아 14∼17일 광주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 행사장에서 북한 정권에 대한 ‘충성 맹세’가 담긴 문건을 북측 참가자에게 전달하려 한 남파간첩 출신의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간부가 국가정보원에 의해 적발돼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송찬엽)는 통일축전 행사장에서 북한 정권에 대한 충성서약과 북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등 A4용지 109쪽 분량의 문서가 담긴 디스켓 3장을 북측 참가자에게 전달한 범민련 서울시연합 부의장 우모(77) 씨를 23일 구속했다.

우 씨에게는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가입, 찬양고무, 회합통신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사건 전말=15일 오후 7시 광주 조선대 대운동장에서 ‘6·15 공동선언 발표 6돌 기념 축하공연’ 행사가 열렸다.

이 축전 남측 대표단의 일원인 우 씨는 이날 오후 9시경 행사장의 북한 대표단석 뒤편에 앉아 있다 미리 준비했던 디스켓 3장을 팸플릿에 싸서 북한 요원에게 건넸다.

디스켓 위에는 자신의 범민련 직책이 적힌 명함이 붙어 있었으며 수신자는 ‘북한 노동당 중앙당 연락부’로 되어 있었다.

우 씨는 북측 요원 옆을 스치듯 지나치면서 북측 요원에게 “중앙당에 꼭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행사장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하지만 우 씨는 자신을 ‘관찰’해 온 국정원 요원에 의해 현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검거됐다. 국정원 요원은 북측 요원에게서 디스켓을 넘겨받았다.

▽‘충성선언’의 내용=디스켓에 담긴 A4용지 109쪽 분량의 문건에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좌익활동을 했으며 6·25전쟁 때 의용군으로 전투에 참여했고 월북한 뒤 인민군으로 복무했다는 얘기가 자서전 형식으로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당에 가입했을 때의 ‘기쁨’과 ‘환희’를 표현한 내용도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는 게 사정당국 관계자 전언이다.

우 씨는 “나는 전향한 게 아니라 장군님의 전사로 살아왔다. 장군님에게 헌신할 무장이 돼 있는 만큼 활동할 기회를 달라”면서 “사상적으로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디스켓에는 북한에 있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 씨는 누구=우 씨는 6·25전쟁 와중에 북한 의용군에 입대한 뒤 월북했다. 인민군 복무 후 남파 간첩 교육을 받은 우 씨는 1961년 전북 부안 부근으로 침투했다.

그는 고향으로 가서 친척들을 포섭하려 했으나 침투 과정에서 호송원 2명이 사살당했고, 우 씨는 친척들의 신고로 검거됐다. 그는 검거 직후 전향서를 쓰고 이듬해 공소보류 판정을 받고 풀려났다. 그는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북에 남은 가족이 나 때문에 힘들게 살까봐 그런 것”이라며 “체육계, 경제계 인사들도 (북한에) 가는데 내가 이런 편지를 전달한 게 무슨 국보법 위반이냐”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과 국정원은 우 씨가 지난해 국방부 앞에서 국가보안법 철폐 1인 시위를 했으며, 평택 미군부대 이전 반대 시위 등 반미 집회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돌출행동’일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 전망=국정원과 검찰은 우 씨가 문건에서 “기회가 되면 만나서 해명도 하고 이야기도 하겠다”며 북측에서 접촉해 오기를 원하는 뉘앙스를 풍긴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우 씨는 2000년 12월 서울 롯데호텔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에서도 같은 고향 출신 북측 상봉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상봉 대상자의 명찰로 바꿔 달고 접촉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우 씨는 이번 문건과 비슷한 내용이 담긴 테이프 3개를 보낸 적이 있다는 게 사정당국 관계자 설명이다. 사정당국은 당시 테이프를 확보하지 못해 우 씨를 구속하지 못했으나 이후 우 씨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검찰은 우 씨가 북한 대표단 근처까지 접근하는 걸 도운 사람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적단체 간부의 통일대축전 참가 논란=통일부는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규정한 범민련 간부들이 통일대축전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단체가 아닌 개인 명의로 참가하는 것은 괜찮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범민련 관계자들은 지난해 북한에서 열린 통일대축전에도 참가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적단체 관계자들이 이 축전에 계속 참가하는 것을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축전이 순수한 교류행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각계각층의 인사가 모두 참여할 수 있다는 개방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결국 대축전이 국보법 위반의 장으로 악용됨에 따라 이 같은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질 전망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