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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약사 부부 둘째아이 키우기]억지로 밥 먹는 아이

입력 | 2006-06-26 03:03:00


최근 한밤중에 첫째 승민이가 배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요즘 식중독이 문제인데 간밤에 뭘 잘못 먹었나? 배에 똥이 차 있나? 과식을 했나?’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는데, 잠을 설친 아내는 짜증 섞인 말투로 쏘아붙였다. “너 자꾸 엄살 부릴래?”

새벽이 되자 승민이는 이불에 결국 대형 피자를 만들어 놓았다. 밥, 호박, 감자, 달걀, 김, 콩 등이 어우러진 토사물이었다. 소화가 제대로 안 돼 뭘 먹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 아내는 그제야 태도를 바꾸며 승민이를 안아 주었다. “승민아, 너 정말 아팠구나….” 아내는 저녁 먹을 때 승민이를 혼내서 급체를 한 모양이라며 자책했다.

승민이는 다섯 살인데도 혼자 밥을 다 먹질 못한다. 반은 제가 떠먹지만 나머지는 먹여 줘야 한다.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와 아내가 쫓아다니며 밥을 먹이는 통에 식습관이 잘못 든 것이다. 아내는 지원이 이유식 먹이랴, 승민이 밥 먹이랴 힘들어하더니 그날따라 화가 폭발했는지 승민이를 아기용 식탁의자에 가두고 ‘밥 다 먹기 전엔 못 내려온다’고 엄포를 놓았다. 놀란 승민이는 억지로 쑤셔 넣듯 밥을 먹었다. 그러니 탈이 날 수 밖에….

새벽 내내 우리는 승민이 배를 어루만져 주면서 아이들 식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껏 아내는 승민이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욕심에 쫓아다니며 밥을 먹이는 수고를 해 왔다. 그렇다고 승민이가 더 잘 자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밥은 놀면서, 쉬엄쉬엄 먹는 것, 내가 먹기 싫으면 엄마가 먹여 주는 것이라는 인식만 심어 주었다.

아이가 엄마 성에 안 차게 먹어서 속상할 수도 있겠지만 억지로 밥을 먹게 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잘 먹었을 때 칭찬을 아끼지 않는 방법을 쓰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배고프면 먹게 돼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면 억지로 밥을 먹여야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아이들과의 산책시간을 저녁 식후에서 식전으로 옮겨 허기를 느끼도록 만드는 것도 좋다. 식사시간을 30분 정도로 잡고 그 시간이 지나면 과감하게 상을 치우고, 아이가 먹지 않은 밥에 대해 미련을 버리자.

둘째 지원이만큼은 올바른 식습관을 들이기 위해 최근에 숟가락을 손에 쥐여 주고, 혼자 숟가락 쓰는 방법을 익히도록(보통 생후 8∼12개월 시작)하고 있다. 비록 옷과 방을 버리고, 밥을 손으로 집어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계속 노력 중이다. 이러다 보면 두 돌 무렵에는 혼자서 밥을 잘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과의 식사시간이 즐거워지려면 엄마가 먼저 ‘많이’, ‘빨리’ 먹이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