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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주영]우리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입력 | 2006-06-26 03:03:00


국민 모두 하나가 되었고 아낌없이 열광했다. 그래서 모처럼 행복했다. 2006년 여름 독일에서 보여 준 태극전사들의 투지와 집념은 세계인들의 가슴속을 흔들어 놓았다. 아시아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키워 준 국민에게는 사랑과 자신감이란 두 가지 지울 수 없는 선물을 안겨 주었다. 그 때문에 우리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자긍심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어둠의 골짜기로 떨어진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경기를 치를 때마다 역력하게 묻어났다. 전사들의 거침없음과, 밀도 있는 투지와 순발력과 대담함의 성공은 산술적 승패 따위는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가져 더욱 빛났다. 태극전사들이 가진 눈부신 역동성은 모두가 맹렬한 정진을 통해서 획득한 성공일 것이다. 자신들의 한 몸을 초개처럼 던지려 드는 초연한 희생 또한 그러하므로 눈물겨웠다.

태극전사들과 붉은악마들의 심장에 출렁이고 있는 몸서리치는 듯한 박동에 놀란 세계인들이 서둘러 찬사와 격려를 보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우리의 함성이 세계인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우리의 붉은 파도는 글자 그대로 물밀 듯 드높은 알프스의 험준한 준령을 거침없이 넘나들었다.

알프스나 안데스와 같이 높은 산맥 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언제나 거친 황야를 휩쓸고 건너 온 매섭고 살벌한 칼바람이 불고 있다. 그래서 그 산등성이 위에 살고 있는 나무들은 측정하기 어려운 질곡을 견뎌 내려고, 살쾡이처럼 어깨를 한껏 낮추고 무릎 꿇고 엎드려 삭풍을 날려 보내며 보일 듯 말 듯 너무나 조금씩 자라게 된다. 그러나 경지에 이른 악기장(樂器匠)들은 고산준령에서 살아가는 이런 나무들을 찾아 베어다 담금질해서 악기를 만든다. 삭풍을 비끼는 비바람과, 처절한 고독과, 시간의 덧없음과, 혹독한 풍상을 이겨 낸 나무로 빚은 악기에서 발산되는 음색만이 다른 어느 악기도 흉내 낼 수 없는 감동적인 공명(共鳴)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태극전사들의 희생적인 담금질과 붉은 파도들이 내뿜는 함성의 조화는 높은 산에서 베어 만든 악기의 공명처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대한민국의 존엄성을 지켜 주는 데 손색이 없었다. 그 힘은 서유럽의 독일 땅과 극동의 한국 땅이라는 한량없는 공간적 거리조차 단숨에 뛰어넘어 마치 지도가 겹쳐 버린 듯 동일한 흐름의 시간대로 만들어 버렸다.

북한 때문에 한때는 흔들기조차 삼가야 했던 우리의 태극기. 그것을 세계를 향하여 맘껏 흔들 수 있게 허락해 주었던 태극전사들과 열정적인 한국의 축구에 대하여 몇 번이고 경례를 올리고 싶은 것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느덧 잊어버리고 있었거나, 혹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거나, 때로는 묻어 버리기도 하였던 애국심의 존재를 일깨워 주었다. 때로는 겁쟁이였고 소심하였으며 불신과 질투, 배신과 새빨간 거짓말, 음험함과 거짓 화해를 일삼아 저질러 온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우리는 그런 거짓된 삶의 족쇄에서 풀려나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런 성과와 성공은 공교롭게도 붉은 파도로 표현되는 우리 젊은이들의 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에 또한 감명 받는다.

전국적으로 100만 명에 이른다는 그들의 하룻밤 집합이 한낱 놀이 때문인 것으로 진단되든, 혹은 분노의 또 다른 표출로 지칭되든, 그것을 예단하여 크게 문제 삼을 것은 아니다. 그 집합이 오로지 흥미나 놀이만으로 채워진 것이든,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분노를 위한 삿대질이었든, 혹은 그러한 자신들의 모습을 스스로 구경하려 하였든, 또는 한바탕의 한풀이 장소로 선택이 되었든, 혹은 욕구불만의 출구로 삼았든, 그 한순간, 아니 그 하룻밤, 혹은 여러 날 밤에 우리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한몸이라는 일체감으로 작동되었다는 의미가 더 크고 넓지 않았는가.

태극전사들의 마지막 경기가 열리려는 날 밤, 어둠이 깔리기 전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의 물결을 목격하였다. 새벽 응원을 위하여 무척이나 일찍 서둘러 나온 그들이 입은 붉은 티셔츠 밖으로 황홀하게 발산되고 있는 짙은 체취를 맡으면서, 그들을 곤경에 빠뜨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기성세대로서의 의무감이나 죄책감도 함께 느끼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애꿎은 질곡조차도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 붉은 물결들에, 그들 어깨 위로 눈부시게 솟아오르는 에너지들을 위하여, 도대체 우리 기성세대는 무엇을 물려주었다는 말인가. 그 속에서도 “오로지 자신의 영달만을 위하여 노조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 들려왔을 때, 더욱 서글프고 암담한 것이었다. 그런 음험함과, 혹은 허풍과 거짓과 선동과 음모의 골짜기에서 벗어나라고, 기염을 토하며 가르치고 있는 것은, 취업 전선에서 소외되어 고단한 삶의 흉터를 가슴속에 감추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라는 것에 숙연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들이 불끈 쥔 주먹과, 제어력이 없을 것 같은 함성과, 정제되지 않거나 분장하지 않아 야생화 같은 몸짓에는 분명 총체적인 미망을 겪으며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우왕좌왕하고 있는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도 분명 섞여 있었을 것이었다. 횃불처럼 타올랐던 그들의 우렁찬 함성은 무척이나 단순하면서도 솔직했던 ‘대∼한민국’이 전부였지만 그 단순한 네 글자에 담긴 의미와 정체성은 덧없는 언어로 예단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활력과 위엄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태극전사들의 온후한 가슴속에 담아 두고 있는 투지와 자부심에서 비롯된 교훈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붉은악마들의 필사적이었지만 청결했던 함성 또한 우리로 하여금 ‘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로, 역사의 날개에 얹혀 행진을 계속할 것이다.

김주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