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을 뚫고 독일행 비행기를 탔던 23명의 태극전사들. 어떤 선수는 3경기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실하게 드러냈고 다른 이는 기대만큼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한 번도 그라운드를 밟아보지 못한 선수도 골키퍼 김용대(성남)와 김영광(전남), 수비수 조원희(수원), 미드필더 김두현(성남)과 백지훈(서울), 공격수 정경호(광주) 등 6명이나 된다.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경기장을 종횡무진 휘저었다. 프랑스전 후반 36분 극적인 동점골은 그의 발끝에서 나왔다. 앞서 토고전에서도 그는 적극적인 공격으로 토고의 반칙을 이끌어 냈고 이는 이천수(울산)의 프리킥 동점골로 연결됐다.
이영표(토트넘 홋스퍼)는 3경기에서 242분을 소화하며 제 자리인 왼쪽은 물론 오른쪽 윙백을 오가며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술 운용 폭을 넓혀줬다.
중앙 공격수 조재진(시미즈 S펄스)은 3경기 모두 선발 출전해 2경기를 풀타임으로 뛰었고 프랑스전에서는 박지성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활약했다. 공중 볼 다툼이 특기인 그는 수 차례 공중 볼을 헤딩으로 따내며 공격 기회를 만들었다.
국내파 중에는 이천수가 빛났다. 3경기 연속 선발 출전(251분)해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하며 토고와의 1차전에서는 그림 같은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는 스위스전에서 0-2로 지고 난 뒤 그라운드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어버렸다. 그는 “스페인에서 힘든 시절을 보냈고, 그걸 극복하고 여기까지 오면서 정말 명예회복을 하고 싶었다”며 “16강 진출이 좌절되는 순간 너무 아쉬워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골키퍼 이운재(수원)는 4골을 내주기는 했지만 8차례의 선방을 펼쳤고, 특히 프랑스전에서는 눈부신 ‘거미손 수비’로 무승부의 발판을 놓았다.
신인 중에는 수비형 미드필더 이호(울산)가 샛별로 떠올랐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발굴한 신인 중 유일하게 본선 조별리그에서 출전한 이호는 3경기 모두 선발 출전(248분)하며 이을용(2경기 112분·트라브존스포르), 김남일(3경기 203분·수원) 등 쟁쟁한 선배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반면 ‘축구천재’ 박주영(FC서울)은 아쉬웠다.
토고, 프랑스전에서 벤치를 지킨 박주영은 스위스전에서 선발 출전해 65분을 뛰었다. 박주영은 큰 위기상황이 아닌데도 트란퀼로 바르네타의 돌파를 무리하게 막다가 옐로카드를 받고 프리킥 기회를 내줬고 이는 스위스의 선제골로 연결됐다. 그는 또 스위스의 체격 좋은 수비수들에게 밀려 제대로 된 기회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청소년 대표로 아시아컵과 카타르 대회 등에서 환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며 ‘한국 축구의 구세주’로 떠올랐던 박주영. 그는 월드컵 대표로 발탁된 뒤 지역 예선 우즈베키스탄과 쿠웨이트전에서 근사한 신고식을 치렀지만 세계무대에서는 아직 보완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쾰른=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