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 슈퍼파워 부활 목마른 미국적 정서 반영
“왜냐고요? 수퍼맨이잖아요. 수퍼맨.”
기자가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수퍼맨 리턴즈’의 연출을 맡은 재간둥이 감독 브라이언 싱어를 만났을 때, “왜 ‘엑스맨 3’를 포기하고 이 영화 연출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허탈하리만큼 간단한 대답을 남겼다. 하긴 싱어에게, 아니 미국인들에게 ‘수퍼맨’에 대한 이유를 묻는 건 어리석은 짓인지 모른다. 그들에게 수퍼맨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수많은 슈퍼 영웅 중 절대지존이며,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이자 신화적인 존재이며, 또한 슈퍼파워 미국 자체이기 때문이다.
수퍼맨을 둘러싼 이런 ‘과잉’에 가까운 의미 부여를 이해하는 건 1978년 탄생해 1980년 속편을 낸 ‘수퍼맨’ 시리즈의 생명을 20여 년 만에 되살린 ‘수퍼맨 리턴즈’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자면, 미국인들은 수퍼맨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미국의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추억을 자극하는 이 영화에 열광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실제 보여주는 것보다 한층 더 폼을 잡는’ 이 슈퍼 영웅의 모습에 다소의 허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수퍼맨은 분명 외계에서 온 초인인 데다 중력에 지배되지 않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의 아들’(The one)이지만, 이 땅의 관객에게 수퍼맨은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울트라맨과 같은 다수의 슈퍼히어로 중 하나(One of them)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클립톤 행성을 찾아 우주로 떠났던 수퍼맨(브랜든 루스)이 5년 만에 지구로 귀환한다. 클라크 켄트로 돌아온 그에게 세상은 너무 달라져 있다. 사랑했던 여기자 로이스 레인(케이트 보스워스)은 이미 아들을 낳고 신문사 편집장의 조카와 약혼까지 한 상태. 한편 감옥에서 풀려난 악당 렉스 루터(케빈 스페이시)는 수퍼맨의 안식처인 북극 수정동굴에서 수정을 훔친 뒤 북미를 바다 밑으로 침몰시키고 자신만의 대륙을 만들려는 야욕을 키운다.
‘수퍼맨 리턴즈’는 역대 최고인 2억5000만 달러(약 25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덩치 큰 영화지만, 블록버스터의 익숙하고 안전한 문법에서 벗어나 있다. 화끈한 액션(수퍼맨이 여객기를 받아 올리며 야구경기장 한가운데에 내려놓는)은 영화 도입부가 아니라 무려 20여 분이 지난 지점에서 고개를 들고, 악당 렉스는 일반적인 ‘나쁜 놈’과 달리 유머감각을 가진 로맨티스트의 기질이 농후한 데다 원대한 계획에 비해 구체적인 실천 능력이 달리는 ‘인간적인’ 악당이며,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수퍼맨이 악당 렉스와 대결을 벌이는 순간이 아니라 수퍼맨이 홀로 인류를 구원하는 외로운 투쟁을 벌이는 순간에 있기 때문이다.
○ 악당 압도하는 ‘절대내공’에 스릴 반감
이런 요소들은 싱어 감독이 수퍼맨이라는 캐릭터를 ‘갖고 놀기’보다는 수퍼맨을 숭배하고 그 신화적(혹은 미국적) 가치를 충실하게 이어가는 쪽에 무게를 두었다는 사실에 대한 방증인 것이다. 발사된 총알이 수퍼맨의 눈동자에 부딪쳐 납작하게 짜부라드는 극단적인 모습에서 보듯, 이 영화의 액션은 관객이 아슬아슬한 스릴을 즐기도록 고안된 쪽이 아니라 수퍼맨의 절대권능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퍼맨의 아버지 조엘(사망한 배우 말론 브란도)을 (미공개 촬영분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다시 등장시키면서 “아버지는 아들이 되고, 아들은 아버지가 된다”는 핵심 메시지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것도 수퍼맨의 권능이 가족신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존재의 무게를 두는 이 영화의 방향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결핍이라는 원죄를 품고 있는 인간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웅이 나타나기를 갈망할 것이다. 하지만 삼각팬티를 입은 최강의 영웅을 경배하기엔 세상이 너무 변해 버린 건 아닐까. 영웅을 갖고 놀고 관객을 갖고 놀던 브라이언 싱어의 뻔뻔스러움이 그립다. 28일 개봉. 전체 관람 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