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30대 남성들이 승용차와 똑같이 생긴 주행 시뮬레이터 앞에 모였다. 모두 운전경력 3년 이상으로 웬만큼 차를 잘 몬다는 운전자들. 일부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을 시청할 수 있는 장치를 받았고, 나머지는 술을 마셨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았다. TV를 보면서 운전할 때와 술을 마시고 운전할 때, 어느 쪽이 ‘거리의 무법자’에 가까울까.》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는 운전자 37명을 대상으로 DMB 시청이 운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험한 결과를 내놓았다. DMB는 고속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도 TV를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선보여 단말기가 빠르게 보급되고 있지만 운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없었다. 실험 결과 TV를 흘깃거리며 운전할 때가 만취 운전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TV팀’ 22명은 ‘DMB폰’과 ‘차량용 DMB TV’를 받았다. DMB폰은 DMB TV에 비해 화면이 작다.
처음엔 아무 장치 없이, 두 번째는 DMB폰을 운전석 오른쪽에 붙이고, 마지막엔 차량용 DMB TV를 달고 운전했다. ‘음주팀’ 15명은 맨정신일 때, 혈중알코올농도가 0.05%일 때, 0.1%일 때 등 3차례 운전대를 잡았다. 0.05%는 음주운전 단속 기준이고 0.1%는 ‘만취’ 상태로 면허가 취소되는 수치.
실험 결과 속도 통제 및 차로 유지 능력은 DMB폰을 사용할 때 가장 떨어졌다. 전방주시 및 집중력은 DMB TV를 볼 때 가장 낮았다.
술을 마셨을 때는 전방은 똑바로 보고 있지만 다른 차가 갑자기 끼어들었을 때 등 위기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졌다.
실험 결과를 종합하면 DMB폰을 사용하는 게 가장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이 혈중알코올농도 0.1%의 만취 상태였고, DMB TV를 볼 때와 혈중알코올농도 0.05%일 때가 뒤를 이었다.
아날로그 TV와 달리 DMB는 차가 달리는 동안에도 깨끗한 화질을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일반 공중파 방송이 나오는 지상파 DMB 단말기만 약 7개월 동안 100만 대 넘게 팔렸다.
경찰 관계자는 “TV를 켜 놓은 운전자가 많지만 단속할 근거가 없어 지도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정차했을 때를 제외하면 운전 중 DMB를 시청할 수 없다’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10개월째 처리가 안 되고 있다.
곧 서비스가 시작되는 초고속휴대인터넷(WiBro·와이브로)은 법안조차 없다. 와이브로는 고속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기술로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다. 운전을 하면서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을 해도 단속할 근거가 없다.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 속도는 어느 국가보다 빠르지만 법과 제도가 못 따라가는 ‘디지털 문화 지체’를 우려하고 있다.
해외에선 일찌감치 화상 장치를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영국에선 운전 중에 멀티미디어 기기를 사용하면 최대 1000파운드(약 175만 원)의 범칙금을 문다.
일본과 호주는 ‘운전 중에 화상이 나오는 장치를 보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미국 오리건 일리노이 버지니아 주(州) 등은 화상 장치를 운전자가 볼 수 있는 곳에 설치하는 것 자체를 금지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김인석 수석연구원은 “DMB나 와이브로는 운전자의 눈길이 자주 가기 때문에 자칫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시급히 단속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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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