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승 기자
《5·31지방선거 참패 직후 ‘독배라도 기꺼이 마시겠다’며 집권 여당의 사령탑을 맡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앞에는 난제가 수두룩하다. 패배감에 빠진 당을 추슬러야 하고, 내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기약할 수 있는 디딤돌도 놓아야 한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김 의장은 서민경제 회복을 위해 열심히 뛰면 반전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본보는 26일 저녁 김 의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고민과 노무현 정부의 각종 정책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인터뷰는 본보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이진녕 정치부장, 김상영 경제부장, 최영묵 사회부장, 김차수 문화부장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3시간가량 이뤄졌다. 》
―열린우리당의 5·31지방선거 참패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정권 재창출을 이뤄냈고 국회 의석 과반을 점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의 기대가 높았는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또 말과 태도가 거슬렸다고 본다. 서민경제가 어려운데 정부와 여당은 지표경제는 괜찮다고 하니까 ‘당신네들은 괜찮고 우리는 안 좋은 것 아니냐’는 거리감, 배신감을 느낀 것 같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옳다고 보나.
“정경유착을 끊고 인위적인 경제 부양을 안 한 것은 옳다. 그러나 대기업과 수출기업만 돈을 번다. 중견 중소기업과 효과적으로 연결이 안 돼 고용을 창출하는 중소기업이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시장에 맡기면 되겠나.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개입할 여지가 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는….
“투기가 다시 시작되면 안 된다는 데 국민의 합의가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가구 1주택의 경우 투기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살다 보니 집값이 오른 데 따른 세금에 고민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투기가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심리가 아직 있는 만큼 불을 붙이는 신호나 사인은 어떤 경우도 안 된다.”
―불합리하다는 걸 인정하는 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당에서 수정할 의향이 있는 것인가.
“정책 선택에서 어려운 점은 근본적인 것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부차적인 것을 어떻게 손보나 하는 거다. 고민하다 끝날 수 있다. 문제는 알지만 그 선택이 부동산 투기를 열어 놓는 식으로 가면 할 수 없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흔들리는 이유 중 하나로 대통령 주변을 감싸고 있는 386 정치인들을 꼽는 사람이 많다.
“386 참모 중에는 경제에 대해 조언하는 사람이 없다. 과거 경제부처의 고위 관료들이 의사정책의 통로에 다 포진해 있다. 또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 출신이 금융과 기업의 요직에 가 있다. 근친교배가 열성을 낳는다. 이들은 개발독재에 충실했던 분들이다. 이들이 외환위기 이후 시장주의로 전환했는데 고민과 고뇌의 과정이 제시되지 않았다. 왜 그런지 설명해야 납득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신뢰가 생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대통령과 의견이 다른 것 같다.
“다른 소리가 나오는 것을 정당 민주화의 방증으로 봐 주기 바란다. 미국은 슈퍼파워이고 우리와 협상력이 대등하지 않다. 명백한 차등과 힘의 격차가 있다. FTA는 외환위기에 못지않은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은 근본적 포괄적 FTA를 원하는데 감당할 수 있는 준비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지금은 아니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준비가 있어야 한다.”
―당정 분리와 당청 관계에 대한 견해는….
“당정 분리가 잘 돼 지금은 대통령이 당에 일절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당에 개입 안 하니 당도 마지막 가치 판단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까지 갔다. 그런데 대선과 총선은 당만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당과 정부를 함께 심판한다. 이번 지방선거도 그랬다. 비극이 여기서 시작된다. 대통령은 역사에 충실하겠다고 하면 된다. 하지만 당은 대선과 총선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에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 가고, 당은 선거에 어떻게 할 것인가 해서 다시 불행해지는데 어떻게 막아야 할지 걱정이다.”
―대통령이 탈당해야 한다고 보나.
“대통령이 임기 말에 탈당하고 정국 불안정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 다음 선거에서 누구를 심판해야 하는지 국민은 헷갈린다. 또 책임정치의 요체인 정당정치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탈당하지 않아야 한다. 다음 대선에서는 열린우리당과 노 대통령이 함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선거 이외의 방법으로 국민의 민심을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이 없다.”
―노 대통령과 김 의장의 관계를 ‘불안한 동거’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 대통령이 성공해야 열린우리당에도 기회가 온다.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물론 성격과 개성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대통령과 당 지도부 상견례는….
“곧 요청할 생각이다.”
―민주화세력은 이미 보상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스스로의 다짐 같은 것이었다. 국민이 이제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 노력한 것에 대한 평가를 안 한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매달리는 것은 의미도, 소용도 없다. 결단할 때 깨끗하게 해야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민주화세력도 이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합리적 대안을 갖고 경쟁해야 한다.”
―개헌에 대한 생각은….
“대선과 총선을 일치시켜야 한다. 헌법적으로 혼선을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말하면 상황을 흔들어 놓으려 한다는 것으로 치환되고, 정략적이라는 역공을 받게 된다. 할 수 있다면 두 가지만 했으면 좋겠다. 총선과 대선 주기의 일치와 대통령 중임제다. 그런데 우리가 한다면 될 것도 안 된다. 한나라당 후보들은 자신들의 유리한 입지가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할 수 있다. 그러나 지도자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올해 초 전당대회 때 고건 전 국무총리를 영입할 경우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도 유효한가.
“나는 전당대회 때 이미 지방선거에서의 패배를 걱정했다. 고 전 총리에게 연대를 제안한 것은 한나라당의 압승을 막기 위해 협력하자는 거였다. 그런데 당내에서는 자강론을 주장하던 정동영 후보가 1위를 했고, 내가 2위를 하면서 연합론이 대안으로는 받아들여졌지만 실현될 수 없었다. 고 전 총리도 한나라당의 일방 승리를 막는 데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로 제한된다.”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정권 재창출에 나설 생각인가.
“우선 당을 정비한 뒤 태세를 갖춰야 한다. 정기국회 끝난 다음에 계기가 올 것이다.”
―당 간판을 바꾸는 것도 포함되나.
“그때 가서 정권 재창출을 위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2007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뭐라고 보나.
“다시 경제라고 생각한다.”
―김 의장이 정권 재창출에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면 대권 도전을 포기할 수 있나.
“그런 불행한 일이 다가오지 않도록 기도하겠다.”
―정권을 걸고 연금 개혁이라는 모험을 감행할 수 있나.
“화급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정치적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조금 더 내고, 조금 덜 받자고 하면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담당 장관뿐인데 정치력에도 한계가 있다. 동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새로운 정권 초기에 밀어야 한다. 권력의 위세를 갖고 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현 정권에서 이루겠다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거짓말을 한 것인가.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 해낼 수만 있다면 박수를 받아야 한다. 유 장관이 이야기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역사라는 게 가끔 우연에 의해서도 실현될 수 있으니까.”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제대로 가고 있다고 보나.
“대체로 찬성한다. 햇볕정책도 옳다고 생각한다. 평화번영정책도 옳다. 다만 모멘텀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럴 때일수록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전환점이 생길 것이다. 역발상이 필요하다. 북한을 시장경제로 통합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한국과 북한은 경쟁상대가 아니다. 북한은 사회경제적으로 붕괴했다. 정치군사적으로만 유지되고 있다.”
―한미관계는 어떻게 보나.
“한국이 좀 컸다. 민주주의도 자력으로 했고, 경제도 발전했다. 그런데 미국이 보면 여전히 꼬마일지 모른다. 우리는 키도 크고 몸집도 커졌는데, 미국은 습관대로 ‘꼬마야 꼬마야’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니까 우리는 ‘그러지 마’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전부는 아니다. 현실적이고 중요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곧 미국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미국은 한국이 미국과 북한 사이 중간에 서 있는 게 기분 나쁜 것 같다. 하지만 겁낼 것은 아니다. 1970, 80년대 일본이 성장할 때 미국 내 반일감정이 대단했다. 성장통이라고 본다.”
정리=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