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 797억 원의 횡령 등 혐의로 구속 수감된 정몽구(68) 현대자동차·기아차그룹 회장이 법원에 신청한 보석이 허가돼 61일 만에 석방됐다.
재판부는 피고인 방어권 보장과 건강, 현대차 경영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석을 허가했다고 밝혔지만 이번 결정으로 재벌범죄를 엄단하겠다는 법원의 의지가 퇴색된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김동오 부장판사)는 2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횡령)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보석을 보증금 10억원에 허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공소사실 중 비자금 부분에 대해서는 대부분 형사책임을 원칙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김동진 그룹 부회장 등 관련자에 대한 수사·기소가 마무리됐을 뿐만 아니라 회사 관계자 조사나 관련자료 압수수색 등이 완료돼 도망이나 증거 인멸의 염려가 소멸됐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번 결정은 불구속 재판 원칙을 구현하고 피고인에게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이며 현대차그룹의 경영공백 사태를 초래해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와 그룹 경영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다소 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피고인 측의 주장, 건강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김동오 부장판사는 "정 회장이 지난 공판에서 비자금 조성·집행에 총괄적인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고 다만 구체적인 과정은 모른다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나머지 부분은 방어권 보장을 위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공판을 진행해 본 결과 비자금 조성·집행 책임을 인정하는 것 외에 나머지 부분은 법적 다툼이 있을 것 같아 심리를 더 해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4월28일 구속수감돼 62일째를 맞은 이날 진료차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머물다가 법원의 보석 결정을 통보받은 뒤 검찰의 집행 지휘에 따라 석방절차를 밟기 위해 서울구치소로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정 회장은 앞으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출퇴근하면서 정상적인 기업 경영을 할 수 있지만 주거지를 변경하거나 3일 이상의 출국 또는 해외여행 시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도망 또는 증거 인멸, 피해자 측에 해를 가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법원으로부터 소환을 받은 때에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출석해야 한다.
재판부는 "정몽구 피고인에 대한 재판은 불구속 상태에서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한 채 진행하되 추후 신속하고 충실한 심리를 진행해 심리가 마무리되면 유죄로 인정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