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성 국세청장이 돌연 사표를 냈다. 역대 청장들의 파워와 ‘비상한 역할’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1966년 국세청이 생긴 이래 15대째 청장이지만 이런 형태의 퇴진은 처음이다. 이 씨를 제외한 14명의 전임 청장 중에는 장관으로 승진한 사람이 무려 7명이나 된다. 그만큼 집권자의 신임을 얻는 자리라는 의미일 것이다. 특이하게도 대부분 건설부 혹은 건설교통부 장관으로 영전해 갔다.
▷초대 이낙선 청장은 ‘세수(稅收)증대’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군 출신인 그는 연(年) 400억 원 정도이던 세수의 개청 첫해 목표를 700억 원으로 늘려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직원들을 독려해 전년 대비 66.5%나 급증한 700억 원 목표를 이룩해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청장의 차에 ‘700’이라는 번호를 달아주며 치하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할 재원 확보가 절실하던 시절 얘기다.
▷군 출신 청장으로는 2대 오정근, 3대 고재일, 5대 안무혁, 6대 성용욱 씨 등이 더 있다. 오 씨는 5·16군사정변 때 해병 중령으로 한강다리를 돌파한 ‘충성파’로, 청장을 지내고 경호실장 물망에도 올랐다. 고 씨는 5년 8개월이나 재임하면서 부하의 ‘업무장악 능력’과 전문성을 중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 씨는 브리핑을 잘하는 부하를 아껴 ‘예산세무서 이근영’ ‘이리세무서 추경석’을 파격적으로 발탁하기도 했다. 이 씨는 나중에 금융감독위원장, 추 씨는 8대 국세청장이 된다.
▷안무혁 성용욱 씨는 1987년 대통령선거 때 불법선거자금을 거두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대선 때 안 씨는 안기부장, 성 씨는 국세청장이었다. 10대 청장 임채주 씨도 1997년 세풍사건으로 불린 불법대선자금 모금의 주역으로 실형을 살았다. “세금은 죽음과 함께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두려운 존재”라고들 한다. 세무사찰을 당해본 사람은 세무원이 염라대왕보다도 무섭다고 한다. 돌연 ‘무서운 자리’를 털고 나선 이주성 청장의 말 못할 사연은 무엇일까?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