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금강산에선 1978년 전북 군산시 선유도에서 납북된 김영남(45) 씨가 28년 만에 남측 가족과 상봉했다. 김 씨가 죽은 줄 알고 영혼결혼식까지 치렀던 어머니 최계월(82) 씨는 고교 1학년 때 실종됐다가 중년의 모습으로 나타난 아들을 끌어안고 흐느꼈다. 누가 만든 비극인가. 북측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상봉을 주선했다며 선심(善心) 쓰듯 하지만 가증스럽다. 애당초 납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김 씨 모자에게 다시 이별하는 고통도 안기지 않을 것 아닌가.
김 씨 가족은 잠시 한을 풀었을지 모르지만 다른 납북자 가족들은 여전히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북에는 485명의 전후(戰後) 납북자와 540여 명의 생존 국군포로가 있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이들 중 2000년 이후 ‘특수 이산가족 상봉’ 형태로 재회한 경우는 26가족 104명뿐이다. 6·25전쟁 때 납북된 8만2959명의 생사는 파악도 안 되고 있다. 김 씨가, 납북돼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이었다는 사실을 일본 정부가 확인해 국제 이슈로 부각하지 않았다면 이날의 가족 상봉도 없었을 것이다.
북은 2월 제7차 남북적십자회의에서 비로소 납북자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하고, 납북자 및 국군포로의 생사확인 문제를 계속 협의하기로 약속했다. 그럼에도 그 후의 장관급회담에서 별 진전이 없다. 북이 반인륜적 범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남한의 지원을 얻어 내는 카드로 쓰는 양상이어서 개탄스럽다.
남북 교류·협력에도 불구하고 북의 대남 적화(赤化)노선은 요지부동이다. 오늘로 4주년을 맞는 서해교전은 이런 북과 대치해야 하는 우리의 안보 현실을 거듭 일깨워준다. 감상적 민족주의에 빠져 불안한 현실을 외면하면 비극은 되풀이될 수 있다.
북은 이제라도 모든 납북자의 생사를 확인해 남측 가족에게 통보하고 생존자는 돌려보내야 한다. 납북자들의 나이로 보아 더 미뤄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도 ‘형식적인 촉구’만 할 것이 아니라 각종 대북 지원과 연계해 결말을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