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리 ― 박라연
가도 가도 산뿐이다가
겨우 몇 평의 감자밭 옥수수밭이 보이면
그 둘레의 산들이 먼저 우쭐거린다
제 몸을 가득 채운 것들을 신의 흔적이다,
라고 믿고 살지만
두 눈으로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사람의 흔적인 옥수수의 흔들림 감자꽃 향기는
왕산(王山)이 본 것 중 가장 귀한 것이다
가도 가도 산뿐이다가
차 파는 오두막집이 보인다
그 주인은 이미 산(山)의 일부이면서
바람의 일부일 것이다
적막 속 어딘가에 집 한 채만 보여도
왕산(王山)은 그 기(氣)를 바꾼다
수십만 평의 산을 거뜬히 먹여 살리는 것은
한 됫박쯤 될까 말까 한
몇 사람의 숨소리일 것이다
―시집 ‘우주 돌아가셨다’(랜덤하우스중앙) 중에서》
인간의 흔적과 인간의 숨소리가 저리도 귀하게 대접받는 곳이 있다니, 목계리는 과연 어디인가? 대개의 산과 들이 인간의 발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친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저 왕산은 몰라도 너무 물정을 모르는 것은 아닌가? 산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꽃과 나비와 산새들은 천 년을 살아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데, 하루아침에 수십만 평의 산을 거뜬히 깎아먹는 게 인간이 아닌가. 시인이 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시인의 눈에 목계리가 아름답고 귀하게 비친 것은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 스스로 ‘산의 일부(一部)’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부러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산과 인간’의 모습인가.
―시인 반칠환